"한국의 윙플레이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한국의 플레이에 대한 전세계 축구계의 평가였다. 축구 변방이었던 한국. 그러나 어떤 상대를 만나도 위협을 줄 수 있는 복병이었다. 동시에 아시아 무대를 마음껏 주무르는 맹주였다. 그 핵심은 윙플레이였다.
빠르고 강했다. 다소 투박하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로 측면을 허물었다. 집요했다. 한 번 막히면 두 번 파고, 두 번 막히면 세 번 치고 들어갔다. 크로스를 올리든 코너킥을 얻든 어떻게든 끝장을 봤다. 틈이 생기면 단 번에 문전까지 내달려 슈팅을 때렸다.
대표적인 선수들이 있다. 서정원(현 수원 삼성 감독) 정재권(현 한양대 감독) 고정운(현 해설위원)이다. 1990년대를 장식했던 '스피드스터'들이었다. 이들이 공을 잡으면 '뭔가 하겠지'라는 기대가 생겼다. 최소한 보는 맛이라도 있었다. 죽기 살기로 내달리니 박진감이 있었다.
계보는 최태욱(서울 이랜드 U-15팀 감독) 이천수(현 해설위원)로 이어졌다. 넓게 보면 박지성도 여기에 들어간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설기현(현 A대표팀 코치)도 측면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과 함께 호흡했던 '마지막 스피드스터'는 차두리였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힘, 한국형 윙어의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였다. 나중엔 윙백으로 전향했지만 파괴적인 측면 윙플레이엔 변함이 없었다.
한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스피드스터, 그리고 윙플레이. 시간이 가면서 차츰 희미해졌다. 일명 '티키타카'로 불리는 짧은 패스 축구가 주류로 자리잡았다. 빠르고 터프한 윙어보다는 기술적인 선수들이 주목 받았다.
나름의 장단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A대표팀 플레이는 많은 축구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했다. 승패를 떠난 이야기다. 이겨도 답답한 경기가 많았다.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플레이가 없다.
그래서 떠오른 게 황일수(30·제주)다. 황일수는 슈틸리케호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전(8차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첫 발탁이다.
K리그에서 황일수의 스피드를 따라올 선수는 없다. 1m73-72kg의 크진 않은 체구지만 힘이 좋다. 슈팅력도 갖췄다.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끊어진 A대표팀 스피드스터 계보를 이을 황일수. 분위기는 좋다. 황일수는 해외파-국내파 대결로 진행된 A대표팀 자체 경기에서 골 맛을 봤다. "빠르다고 듣긴 했는데 실제 붙어보니 더 빠르다." A대표팀 동료들의 증언이다. 황일수는 "카타르전 출전 기회가 온다면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