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가게 캠페인-4.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 '대운산채'
대전 지하철 서대전네거리역 인근 골목에 지극히 평범한 식당 하나가 있다.
쌈밥과 돌솥밥을 전문으로 하는 '대운산채'다. 위치도 평범하고, 시설도 평범하고, 메뉴도 평범한 식당이다.
한데 이 집 사장 이윤근 씨(59)는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 '버는 만큼 베풀자'고 생각하는 기부천사다. 액수가 크든, 작든 평생 기부를 이어가겠다는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년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부끄러운 돈입니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조차 부끄럽고요. 그래서 약속을 하고도 많이 망설였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될 수 있다면 저에게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장이 본격적으로 기부를 시작한 것은 2012년 초.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착한가게 캠페인'을 알게 됐고, 곧장 전화를 걸어 회원으로 등록했다. 매월 3만 원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조건도 좋았지만, 늘 '푼돈이라도 나누고 살자'고 생각하던 이 사장에겐 다시 없는 기부처가 생긴 것이다. 그게 벌써 5년이 넘었다. 기부가 생활 일부가 된 셈이다.
'착한가게'를 알기 전에는 ARS 버튼을 많이 눌렀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기부 관련 프로가 나오면 휴대폰부터 찾았다. 라디오에서 '성금', '모금' 얘기가 나와도 마찬가지. 060이나 700으로 시작되는 번호만 뜨면 본능적으로 눌렀다. 그것도 연속해서 서너 번씩. 매월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성금을 보낸 지도 벌써 몇 년 됐다.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건 마음에 달린 것 같아요. 어려우면서도 남을 돕는 분이 많잖아요. 심지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40만 원의 생계비를 아끼고 쪼개 몇천 원씩 성금으로 내놓는 분도 계시고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죠. 심성을 타고나신 것 같아요. 거기에 비하면 저는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사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피 끓는 청년 시절을 중동에서 보냈다. 동생들 가르친다고 7년 세월을 트레일러 몰고 리비아와 이라크 사막을 누볐다. 건설장비 운반이 주업이었는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연료도 아끼고 시간도 단축할 요량으로 사막의 지름길을 택했다가 모래에 빠져 이틀씩 갇히기도 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현지 사막경찰이 찾아낼 때까지 목숨 걸고 버텨야 했다.
그런 강단이 사업 밑천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장사가 신통찮아 고전할 때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가 쓴 책을 읽고 감동하여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당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백씨가 아무 전화나 다 받아주고, 아무나 다 만나줄 시간은 없었을 터. 이 사장은 어금니 물고 끝도 없이 전화를 걸어 마침내 백씨를 항복시켰다. 얼마나 전화를 해댔으면 "도대체 어떤 분인지 한번 만나나 봅시다"라고 했을까. 지금 대운산채를 끌고 가는 양대 메뉴 쌈밥과 돌솥밥도 그때 백씨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덕분에 영업이 호전되고 허리도 좀 펼 수 있게 됐지만, 사업 초기에 진 빚을 다 털어내진 못했다. 버는 대로 원금 갚으랴, 이자 내랴 여전히 죽을 각오로 뛰고 있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내 온 기부금이니 그 어떤 거액 못지않다 하겠다.
이 사장은 번호표 나눠주며 장사해 보는 게 소원이라 했다. 돈 많이 벌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게 해줄 가장 중요한 무기라며 손님들의 메모로 빼곡한 천장을 가리킨다. '맛있어요', '대박나세요' 같은 칭찬과 응원 일색이다. "재산목록 1호입니다. 나태해질 때마다 보며 반성하고, 힘도 얻고, 각오도 새롭게 하죠." 대전=최재성 기자 kkachi@sportschosun.com
▶착한가게란?
중소 규모의 자영업소 가운데 매월 3만 원 이상 일정액을 기부해 나눔을 실천하는 가게를 뜻한다. 2005년 1호를 시작으로 13년째인 올해 4월 2만 호 착한가게가 탄생했다. 착한가게에 가입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인증 현판을 달아주고 해당 업소의 소식을 온?오프라인 소식지에 실어 홍보한다. 특히 오는 6월부터 9월까지 펼쳐지는 집중 가입 기간에는 골목이나 거리에 있는 가게들이 단체로 가입하여 새로운 착한골목과 착한거리도 탄생할 예정이다. 주요 협회 단위의 회원 가게들이 동참하는 단체형 가입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입문의 : 홈페이지(http://store.chest.or.kr/), 사랑의열매 콜센터(080-89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