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명문 클럽'을 원한다.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다. 이름에 걸맞는 역사 뿐만 아니라 실력도 갖춰야 진정한 '명가' 대접을 받는다.
K리그 클래식 울산 현대는 '명가'라는 타이틀을 자신있게 내놓은 얼마 안 되는 팀이다. 1983년 창단한 클럽의 역사가 곧 한국축구사였다. 허정무 최강희 김병지 유상철 이천수 김 호 차범근 김정남 김호곤 등 내로라 하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거쳐간 무대다. 두 번이나 K리그 정상에 올랐으나 준우승만 7회를 기록하면서 '만년 우승후보'라는 달갑잖은 꼬리표도 붙었다. 하지만 매 시즌 화려한 진용을 꾸려 우승에 도전하면서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 나아가고 있다.
울산이 또 하나의 역사를 창조했다. 울산은 19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스타디움에서 가진 강원FC와의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2라운드에서 강원FC를 1대0으로 제압했다. 이날 승리로 울산은 프로축구 첫 500승 고지에 오른 주인공이 됐다. 1983년 창단 이후 리그 1226경기 만에 거둔 결실이다.
울산은 개막 전까지 488승으로 라이벌 포항(489승)에 뒤진 채 출발했다. 개막전에서 포항을 잡으며 균형을 맞췄으나 이후 6경기서 단 1승에 그치며 고전했다. 포항이 개막전 패배 뒤 4승을 챙긴 것과 대조적이었다. 클래식 뿐만 아니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을 병행했던 울산은 4월 22일 전남에 0대5로 대패한데 이어 가시마(일본)와의 ACL 조별리그서 0대4로 참패하며 난파 위기에 몰렸다.
위기의 순간 뭉친 것은 선수단 자신이었다. 라커룸 내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는 결과로 귀결됐고 반전의 실마리도 서서히 잡혀가기 시작했다. 4월 30일 인천전부터 지난 15일 광주전까지 울산이 14경기서 9승을 거두는 동안 포항은 5승에 그치며 흐름이 뒤바뀌었다.
500승에는 이종호의 투혼도 한 몫을 했다. 앞선 광주전에서 입술 10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한 이종호는 강원전에 출전을 자처하고 나섰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부상이 악화될 수도 있어)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본인이 강력하게 출전을 원했다"고 밝혔다. 이종호는 전반 33분 김인성이 강원 진영 오른쪽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받아 수비수 두 명의 마크를 비집고 들어가 오른발로 결승포를 꽂아넣으면서 승리의 주역이 됐다.
새 역사는 울산에겐 '환희'였지만 강원에겐 '치욕'이었다. 강원은 지난 2011년 7월 16일 홈 경기에서 울산에 1대2로 져 400승 제물이 된 바 있다. 또 다시 안방에서 상대에게 승리를 내주며 역사에 이름을 새기게 된 게 달갑잖을 만하다.
평창=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