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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WT조정원 총재 "태권도는 마지막 남은 남북교류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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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빗줄기가 8월의 무더위를 잠시 식혀주던 오후. 낮은 구름 아래 차분하게 가라앉은 경복궁은 고즈넉하게 아름다웠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통의동 세계태권도연맹(WT) 사무실. 외국인 손님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았다. 외국인들은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본다. 스포츠 뿐 아니라 한류 문화 콘텐츠로서 태권도를 알려나가야 하는 이유다.

세계태권도연맹의 수장은 조정원 총재(70)다. 208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한 거대 조직의 총재직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지난해 5선에 성공했다.

조 총재는 이번 임기 동안 새로운 태권도 3.0 시대를 열어갈 참이다. 태권도의 세계화, 가깝게는 한반도 평화, 넓게는 세계 평화에의 기여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촌음을 아껴 뛰고 또 뛰고 있는 조 총재를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장 바쁜 '왕따' 노신사

"안 그래도 어제 들어왔어요."

접견실로 들어서는 멋진 백발의 신사는 시차를 모른다. 일년의 절반 이상 해외에 머무는 숨가쁜 일정을 거뜬이 소화하는 비결이다. 매끈한 피부, 힘있는 말투. 7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어제 귀국한 사람이라곤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 "다행히 제가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요. 복받았죠. 출발할때 잠들면 도착할때 깨서 적응하죠."

어려움이 없을까. "작년에 지구 한바퀴 도는 것을 세번했어요. 미주-유럽-중동 도는 일정이었죠. 작년에 비행기에서 지낸 시간만 27일이더라구요. 저는 어디를 가도 한군데서 머물지 못하고 바로 짐싸서 계속 움직여야 하니 승무원 보다 이동 강도가 더 세죠. 실제 스튜어디스도 내게 어떻게 견디냐고 묻더라고요. 결국 의지 아니겠어요?"

은퇴를 하고 노후를 즐기고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이. 하지만 조 총재는 또래 중 가장 분주한 인사다. 그러니 지인들과 왕래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친구들 사이에 소위 왕따죠. 뭐. 허허. 모임을 해도 으레 국내에 없겠거니 해서 안 불러요. 골프도 끊었다니까요."

▶남북교류, 최후의 보루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할까. 목표가 분명하니 흔들림이 없다. 태권도의 세계화와 한류문화콘텐츠 확산, 그리고 태권도를 통한 글로벌 평화 창출, 조 총재가 걷고 있는 길이다. 그중 평화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명예총재도 맡고 있는 조 총재는 사명감이 있다. 글로벌 테러가 난무하고 있는 현실. 가깝게는 북핵으로 촉발된 북·미 간 대립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조 총재는 남북교류의 끈으로서 태권도의 역할을 강조한다.

"태권도는 현재 남북간에 유일하게 남은 교류의 끈이에요, 이것마저 없었다면 대화거리가 없어요. 북한태권도협회와 대한태권도협회의 교류가 아니라 WTF와 ITF(북한이 중심이 된 국제태권도연맹) 간 공식적 교류라 (정치적) 부담이 없는 창구죠. 남북 긴장과 교류 완화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조 총재는 다음달 중순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과 함께 방북할 예정이다. "평창올림픽에 ITF 시범단이 와서 WT시범단과 합동 공연하는데 합의했어요. 서명은 이번 평양서 하자고 하더라고요."

▶문재인 정부와 태권도

"연맹 창설 이후 국가 원수가 참가한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지난 6월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깜짝 손님이 대회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북한에서 온 장 웅 IOC 위원, 리용선 ITF 총재 등을 만났다. 태권도를 매개로 경색된 남북 간 긴장 관계를 해소하려 애썼다.

문재인 정부에서 태권도의 의미는 각별하다. 태권도를 통한 남북 교류와 태권도 문화콘텐츠화는 조 총재의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특히 태권도 문화콘텐츠화는 스포츠 중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태권도는 스포츠만이 아니다. 한류를 상징하는 문화콘텐츠로서의 상징성도 있다.

조총재 역시 한류 문화로서의 태권도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다.

"태권도 만큼 한국을 알린 것이 없어요. 한류의 원조죠. 코리아는 몰라도 태권도는 알아요. 태권도를 좋아하면 한국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어요. 용어도 한국어죠. 태권도 하는 사람치고 아리랑, 태극기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한국 위상을 높이는데 태권도 만한게 없어요. 태권도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 뿌리를 내렸죠. 이를 국가 이익과 연결시키고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태권도의 세계화 3.0

이를 위해 조 총재는 불철주야 발로 뛰고 있다.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면담을 했다. 조 총재의 최근 화두는 태권도의 학문화다. 세계 각 국 대학에 태권도 학과를 늘려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자 한다. 이번 우즈벡 대통령 면담에서도 양국의 역사 등 미리 공부를 해 좋은 인상을 심으며 화제를 이어갔다. "원래 30분 보는 건데 한시간 넘게 대화했어요. 우즈벡 체육대학에 태권도 학과가 있는데 국립대학에 만들 생각 없냐고 했더니 쾌히 승락하더라고요. 9월까지 준비해서 10월에 학생 뽑겠다고 하길래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5월에 불가리아 갔을때 체육부 장관, 대통령에게도 태권도학과 이야기를 했더니 승락했어요. 런던에 유니버시티 오브 이스트 런던 총장과 이야기 했는데 금년 안에 준비하겠다고 했어요."

조 총재는 왜 태권도학과 개설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우리 석사들이 해외로 뻗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태권도가 학문적으로 자리 잡으면 절대 안 없어지죠. 세계 각지에 사범을 보내던 시대는 끝났어요. 이제는 태권도학과 등 학문적인 접근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국에 태권도 인구만 3000만명이에요. 중국에도 태권도학과를 만들어서 한층 높은 단계로 키워갈 겁니다."

▶재미 vs 공정의 상생법

조 총재의 노력에도 불구,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 잔류를 위해 타 종목과 경쟁해야 하는 위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정식종목에 편입된 가라데와 비교가 불가피하다. 전자호구와 비디오 판독 도입 후 태권도는 가장 공정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문제는 '재미'와의 조화다. 날것 그대로인 이종격투기에 눈높이가 맞춰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올림픽 기준에 맞도록 '위험' 요소는 싹 걷어낸 채 채 말이다.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조 총재는 재미와 공정의 상생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중이다.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프로화 가능성 역시 '재미'라는 요소에 달려있다.

"어떻게 돋보이게 하느냐가 과제겠죠. 이번 무주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정된 룰을 시행해봤는데 호평도 있었어요. 내년 주니어대회 때 더 보완해 다시 시연할 예정입니다. 첨단 섬유가 많이 발전하고 있어요. 도복과 호구가 작고 가벼워지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

▶208+1,

세계태권도연맹 회원국은 무려 208+1이다. 꼬리에 붙는 +1은 난민이다. 조 총재는 소외된 사람과 지역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잊지 않는다.

"UN 통계상 난민이 몇명인지 아세요? 6500만이에요. 인구로 보면 27위 국가 규모죠. 난민캠프에서 방과 후 할 수 있는게 없어요. 태권도 박애재단에서 전용 태권도 센터도 만들고 업체도 선정 중이죠. 엄홍길 재단에서 네팔에 학교 짓는 활동을 하는데 우리 태권도와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해 협약식을 할 계획입니다."

장애인 태권도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장애인 태권도가 올림픽에 들어간 것이 큰 사건인데 많이 알려져 있지 않죠. 다른 나라에서 장애인 태권도는 블루오션이라 생각하거든요. 실제 유럽, 카자흐스탄, 몽골, 아프리카 등이 앞서 있어요. 오는 10월 런던 세계장애인태권도 선수권이 전초전이 될겁니다. 도쿄에서 패럴림픽 열리는데 우리가 메달 하나 못따면 종주국으로 체면을 구길 수도 있어요."

조 총재는 세계무대에서 태권도 종주국 한국의 위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훗날 외국인이 총재가 되더라도 세계태권도연맹 본부는 한국에 남아야 해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겠죠. 번듯한 건물이나 국제스포츠조직으로 면세혜택 등이 이뤄져야해요. 아니면 외국인이 되는 순간 본부는 그 나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우리 국기가 태권도라고 하는데 정작 법적 지원 기준과 체계가 없어요. 국회에서 법적 제도를 마련해 줘야 합니다. 우즈벡이나 네팔이 먼저 국기를 태권도로 정하면 창피한 일이니까요."

▶IOC를 부탁해

IOC 내에서 한국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병석에 있는 이건희 IOC 위원의 사퇴로 이제 남은 IOC위원은 유승민 선수위원 1명 뿐이다. 한국 스포츠 외교 입지가 한껏 좁아진 상황. 이를 의식한 듯 최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도 조정원 총재 등이 함께 배석한 자리에서 "한국에 IOC 위원을 맡으실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라며 당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평생 태권도 발전과 스포츠에 헌신해온 조 총재는 IOC 위원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사다. 대학 총장 출신으로 스포츠 전반에 대한 이해와 국제적인 감각에 완벽한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건은 나이다. 평창 총회가 열리는 내년이면 조 총재는 만 70세가 넘는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데 IOC 연령 제한이 있어요. 만 70세면 떠나야 하죠. 단 이미 IOC 위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국제연맹(IF) 회장일 때는 한번 더 할 수 있게 해주죠. 특별 결의가 있지 않는한 현행 규정상으로는 안되는거죠. IOC에 선택권이 있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어요. 위원장 재량 등 그쪽에서 예외를 두지 않는 한…."

정현석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