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명불허전 김선아다.
김선아가 공감 멜로로 인기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김선아는 SBS 월화극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안순진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안순진은 이혼한 전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독촉에 시달리는 40대 스튜어디스다. 세상만사가 무의미해진 그의 앞에 절대 사랑에 빠질 것 같지 않은 남자 손무한(감우성)이 나타나며 안순진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는다.
이 안순진은 김선아의 인생작 중 하나인 '내 이름의 김삼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순진과 김삼순 모두 결핍과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그 멍에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새로 만난 완벽남이다. 완벽남과의 연애를 꾸려가는 과정도 비슷하다. 빚을 갚기 위해 의도된 연애, 혹은 계약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 진심으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 과정은 아주 유쾌한 B급 정서와 나름의 현실감으로 그려진다. 5일 방송에서도 그랬다. 안순진은 자러오라는 손무한의 말에 화장까지 하고 그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뜻밖에 방귀 타이밍을 맞았고, 결국 방귀를 방출한 안순진은 파워풀하게 가동되는 공기청정기 때문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게'와 '개'를 잘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을 하며 허당미를 발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노브라'라며 과감하게 손무한을 유혹하는 노련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기본적인 골조가 같기 때문에 시청자도 언뜻 언뜻 안순진에게서 김삼순을 발견하기도 한다. 30대의 김삼순과 40대의 안순진이 묘하게 오버랩 되며 향수를 자극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김삼순에게는 없던 세월의 깊이가 녹아든 안순진은 좀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김삼순이 뚜렷한 목적과 꿈을 갖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였다면, 안순진은 험난한 풍파 속에서 쌓인 상처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물이다. 빚쟁이에 쫓겨 승무원 유니폼이 찢겨질 만큼 도망치기도 하고 자신의 자리를 꿰찬 내연녀와 그 아이에게 이미 무뎌진 날을 세우기도 한다. 세월의 상처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안순진의 모습은 짠하고 안쓰럽다. 5일 방송은 그런 안순진에 대한 연민이 최고조에 달한 회차라 할 수 있다. 에필로그에는 딸을 떠나 보내며 오열하는 안순진의 모습이 담기며 먹먹함을 더했다. 11년 전 하나뿐인 딸을 잃고 죽기를 갈망하며 의미없는 삶을 살아온 안순진의 삶과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엄마의 슬픔을 절절한 눈물로 그려내는 김선아의 연기에 시청자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시청자는 2006년 한 남자와의 달달한 사랑을 꿈꿨던 김삼순을 기억한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김선아는 20년째 평승무원이라 권고사직 압박을 받고 빚쟁이에 쫓겨다니며 "쓸데도 없는 몸 아껴 뭐할래"라는 말을 듣는 안순진으로 완연한 중년이 되었음을 알렸다. 12년 전의 가볍고 달달한 사랑이야기에 끌렸던 시청자 또한 김선아와 함께 나이를 먹으며 그가 그려내는 B급 감성과 세월의 향 진한 멜로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전개의 빈틈을 채우는 현실적인 에피소드 속에서 나와의 교집합을 찾아내고, 좀더 깊게 김선아의 안순진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이미 시청자는 다시 돌아온 김삼순, 중년 버전 김선아에게 빠져 들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2월 20일 8.1%, 10.5%(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스타트를 끊은 뒤 꾸준히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의 향기와 함께 돌아온 김선아의 멜로가 또 한번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어른 멜로'는 어떤 색일지 기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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