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모태범(29)이 19년 정든 빙판을 떠났다.
모태범은 26일 오후 7시30분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팅장 초중고대학실업 전국남녀스피드대회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순간'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절친한 후배 김준호와 함께 태릉스케이팅장에서 마지막 활주를 하며 팬 및 빙상인, 지도자, 심판들을 향해 일일이 고개숙였다. 김상항 빙상연맹 회장의 기념패 전달식이 이어졌다.
은퇴식 직후 모태범은 "사이클 전향은 아마추어로 올림픽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륜 도전"이라고 밝혔다. "경륜후보생으로 1년간 훈련을 거친 후 선발돼야 프로 경륜선수로 뛸 수 있다"고 했다. 19년 정든 빙판을 떠나 벨로드롬에서 새도전을 선언했다.
모태범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금메달로 대한민국 빙속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승훈(30·대한항공) 이상화(29·스포츠토토) 등 '한체대 절친 삼총사'의 유쾌한 반란은 대한민국에 큰 기쁨을 선사했다. 이후 소치올림픽, 평창올림픽까지 '삼총사'의 존재는 후배들에게 가야할 길이 됐다.
모태범이 빙판 위를 질주해온 시간은 무려 19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재미삼아 스케이트를 타던 아들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의 권유로 은석초등학교 빙상부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남다른 재능으로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17세 때 주니어대표로 선발된 후 이후 2006, 2007년엔 세계주니어선수권 500m를 연속 제패했다. 2009년 하얼빈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1000m, 1500m 2관왕을 달성했다. 팀추월에선 은메달도 획득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은 '화양연화'였다. 500m, 1000m, 1500m 세 종목에 출전해 500m 1차 레이스 34.92초, 2차 레이스 34.90초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00m에선 1분19초12를 기록,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2012년 헤이렌베인, 2013년 소치세계선수권 500m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을 넘어서고도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친 후 슬럼프를 겪었다. 84kg 남짓하던 체중은 한 때 107kg까지 불었다. 그러나 자국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20kg를 다시 감량해냈고, 평창올림픽 500m, 1000m 출전권을 따냈다. 500m에서 16위를 기록했지만 혼신의 질주는 감동이었다. 1000m 경기를 앞두고 훈련중 부상으로 1000m 출전이 불발됐지만 주장으로서 후배들의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남자 1000m에서 '깜짝 동메달'을 획득한 김태윤은 "(모)태범이 형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늘 웃는 운동 분위기를 이끌어주셔서 즐겁게 했다. 평창 주장으로서 형 역할을 정말 잘 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차민규 역시 '베테랑 선배' 모태범의 존재에 고마움을 감추지 않았다.
19년 스케이터의 인생을 마감한 모태범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사이클 선수로 전향을 선언했다. 모태범은 2015년 마스터스 사이클 양양대회에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바 있다.
유쾌하고 따뜻한 인기만점 선배, 모태범의 은퇴식은 외롭지 않았다. 최고의 선수 모태범의 꽃길을 응원하는 화환들이 줄을 이었다. '갑(자기) 은(퇴) 사(이클)' '꽃길만 걸어요!' '2020 메달사냥 가즈아~!' '페달 밟고 빌딩 사자' 등 재기발랄 응원문구들이 모태범을 향한 빙상 선후배들의 애정을 엿보게 했다. 태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