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한대로 시작은 포백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기존의 플랜A를 한번 더 테스트했다. 신태용 감독은 28일 대구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온두라스전에 4-4-2 카드를 꺼냈다. 골문은 조현우(대구)가 지켰고, 홍 철(상주) 김영권(광저우 헝다) 정승현(사간도스) 고요한(서울)이 포백을 이뤘다. 허리진에는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주세종(아산) 정우영(빗셀고베)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가 포진했고, 최전방에는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섰다.
기존의 4-4-2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공격적인 라인업이었다. 특히 측면이 그랬다. 좌우 윙백에는 스리백 자원으로 평가받은 홍 철과 고요한이 섰고, 왼쪽 미드필더로는 윙포워드 유형인 이승우가 자리했다. 기본 포메이션은 4-4-2지만 이승우가 적극적으로 올라가 손흥민 황희찬과 스리톱을 이루는 4-3-3 형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에 쓰던 4-4-2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4-4-2는 권창훈(디종)의 부상과 함께 사실상 폐기 수순을 겪는 듯 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이승우-이청용을 활용한 4-4-2 카드를 꺼냈다. 신태용식 4-4-2에서 좌우 미드필더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승우가 이재성(전북), 이청용이 권창훈(디종)의 역할을 했다. 공격시에는 안쪽으로 좁혀 플레이를 했고, 측면 공격은 홍 철-고요한 좌우 윙백에게 맡겼다. 수비시에는 넓게 벌려섰다.
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이승우는 경기 초반 좁혀서 플레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이승우는 연계가 좋은 선수는 아니다. 순간 센스와 폭발력으로 한두차례 좋은 돌파를 만들어냈지만, 미드필드 자리에서 100%의 역량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패스 미스는 제법 있었지만, 성인 레벨에서도 기술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만의 센스로 윙포워드가 아닌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청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몸상태였지만, 경기 감각은 역시 아쉬웠다. 좋은 위치로 찾아들어가는 장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승우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이날 가장 눈에 띈 선수는 고요한이었다. 이날 펼친 위협적인 장면은 대부분 고요한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온두라스가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자 고요한은 위치를 더욱 높여 연계 플레이에 주력했다. 미드필드처럼 움직이며 공격 작업에 힘을 보탰다.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침투했다. 수비에서도 별 약점을 보이지 않았다. 포백의 윙백 역시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가장 고민인 수비는 사실 이날 이렇다할 평가를 내리기 어려웠다. 상대의 공격이 워낙 무딘데다, 사실상 공격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백 라인에 부담이 될만한 상황이 없었다. 다만 압박 자체는 칭찬해줄만 했다. 신태용호는 이날 최전방, 미드필더가 전반 초반부터 적극적인 압박에 나서며 수비라인의 짐을 덜어줬다. 본선에서 만날 상대가 온두라스보다 몇수 위인만큼 더 적극적인 압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후반 이청용 홍 철 정승현 손흥민 고요한 이승우를 빼고 문선민(인천) 김민우(상주) 오반석(제주) 김신욱 이 용(이상 전북) 박주호(울산)을 넣었다. 스리백 테스트는 없었다. 이승우가 오른쪽, 문선민이 왼쪽에 자리했고, 김민우와 오반석은 홍 철 정승현의 자리에 들어갔다. 김신욱과 이 용도 손흥민 고요한의 자리에 섰다. 선수만 바뀌었을 뿐, 전술은 그대로 였다. 김민우가 고요한 처럼 적극적인 빌드업에 나서며 왼쪽 공격도 활발해졌다. 문선민은 빠른 스피드로 조커로의 가능성을 보였다. 기존과 다른 유형의 선수들이 들어가며, 다른 매력의 4-4-2가 펼쳐졌다. 여기에 플랜A의 핵심이었던 이재성(전북)이 돌아올 경우, 그 위력은 배가될 수 있다.
플랜A의 재확인, 온두라스전의 수확이었다.
대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