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에 서울대와 U리그 상반기 마지막 홈경기가 있어요. 올해 서울대 만만치 않아요. 잘합니다."
'U리그 홍보대사'를 자청하는 '왼발 달인' 하석주 아주대 감독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축구 명문 부평고 출신 이인성 감독이 이끄는 서울대 축구부는 체육교육과 학생들 중심으로 구성됐다. 지난 5월 4일 예원예대와의 4권역 리그 6라운드 홈경기에서 3년만에 첫승을 신고했고, 최근 5경기에서 1승3무1패를 달리고 있다는 이들의 경기력이 궁금했다. 초여름 햇살이 쏟아지던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 아주대 인조구장, 아주대-서울대의 U리그 12라운드 현장을 찾은 건 이 때문이다. 기말고사가 한창인 가운데 열린 U리그 경기, 새벽까지 시험 공부에 페이퍼를 쓰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고 온 축구선수들이 즐비했다. 이 감독이 "수원까지 직접 자기 차를 몰고 온 선수들이 많다. 저 선수는 시험 보느라 15분 늦게 왔다. 워밍업도 못했다"며 허허 웃는다.
▶서울대에, 맨시티 유스 출신이 있다?
서울대는 객관적 전력에서 절대 우위인 아주대를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으로 맞섰다. 공격라인을 주도하고, 프리킥 등 세트피스에서 전담키커로 나서는 '7번 선수'는 발군이었다. '7번 누구에요?' 물었더니 "맨시티 유스 출신"이라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부산 아이파크 유스, 잉글랜드 맨시티 U-15 축구유학을 거쳐 울산 현대고에 진학한 류진엽은 2010~2012년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친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공부에 매진, 수시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지난달 18일 동국대전(1대1무) 1일 서울디지털대(1대1무)에서 잇달아 골맛을 본 명실상부 서울대의 에이스다.
이날 아주대는 정정용호의 에이스 엄원상이 2주만에 U리그에 복귀, 풀타임을 뛰었다. 서울대는 전반 10분 김동균에게 선제골, 전반 24분 엄원상에게 연속골을 허용했다. 벤치에선 "괜찮아!" "분위기 올려!" "다같이 다같이!" 선수들을 투혼을 독려하는 외침이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0-2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쳤다.
하프타임,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내용은 나쁘지 않다. 수비 커버할 때 간격을 더 신경 쓰자. 수비 형태를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5분 남았다. 전부 열심히는 뛰고 있지만 자신의 플레이를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승패를 떠나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주문했다.
▶40m 최장거리 원더골이 터졌다
후반 초반, 아주대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엄원상이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공격을 주도했다. 엄원상이 야심차게 노려찬 후반 첫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다. 골과 다름없었던 두 번째 슈팅은 서울대 수비수가 골대 안으로 뛰어들며 필사적으로 걷어냈다. 포기하지 않는 투혼이 빛났다. 엄원상을 집중마크한 '서울대 6번' 신우진은 한눈에 '악바리'였다. 엄원상을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후반 골이 먼저 나온 쪽은 뜻밖에 서울대였다. 두세 번의 결정적 위기를 넘긴 서울대에서 믿기 힘든 '원더골'이 작렬했다. 후반 20분, 자신의 진영에서 볼을 뺏어낸 10번 오건호가 하프라인 인근에서 쏘아올린 공이 골키퍼의 키를 훌쩍 넘겨 골망으로 빨려들었다. 40m는 족히 넘을 법한 최장거리 골이 작렬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원더골에 서울대가 뜨겁게 환호했다. 2-1로 쫓기게 된 아주대가 공격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전정호, 길준기(2골), 장종원의 연속골에 힘입어 6대1로 대승했다.
경기후 '공부하는 지도자' 이인성 감독은 선수들에게 승패보다 내용을 이야기했다. 4월 27일 올시즌 첫번째 아주대와의 맞대결에선 0대2로 패했었다. "오늘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가 더 나왔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온 분위기가 많이 안나왔다. 우리의 방향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끝까지 격려하는 분위기다. 오늘 마지막 휘슬 때까지 서로를 격려하지 못한 부분, 실점하고 실수해도 서로를 격려하면서 '하자하자'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이 감독의 말에서 서울대 축구부를 이끄는 또렷한 철학이 읽혔다.
'원더골의 주인공' 오건호는 "다들 어제까지 기말고사를 보고 오늘 보고서를 마무리한 후 원정 경기를 뛰러 왔다"고 했다. 훈련량을 묻는 질문에 "매일 수업을 마친 후 오후 5시반부터 8시까지 2시간 반 정도 훈련한다. 그 외에 웨이트 등 개인훈련을 한다"고 답했다. "우리 팀은 훈련량도 부족하고 비 선수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끈기, 근성만큼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며 남다른 자긍심을 드러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원더골 이야기'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넓은 시야가 장점이다. 경기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일본 츠쿠바대와 교류전때도 저 위치에서 골을 넣은 적이 있다. 원더골은 언제나 짜릿하다." 공부하는 축구선수의 길, 힘들지만 행복한 그 길을 계속 걸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졸업 후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축구선수로도 끝까지 한번 해보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수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