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체육교류의 길이 활짝 열렸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껏 무르익은 한반도의 봄. 평화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봄을 알리는 전령은 바로 스포츠다. 체육 교류는 남북 평화의 시대를 여는 열쇠다. 스포츠의 힘은 정치보다 위대했다. 실타래 처럼 꼬인 정치적 대립과 갈등도 체육 교류를 통해 풀린 경우가 수두룩 하다. 이념과 문화, 언어가 이질적이어도 스포츠는 차이와 차별을 뛰어넘는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발걸음. 6월18일에 또 한번 전진했다. 또 한번 진보의 역사로 기록될 뜻깊은 하루였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 판문점선언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북측은 "판문점선언 후 체육회담을 가장 먼저 시작한 데 대해 뜻깊게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남측은 "체육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다. 앞으로도 우리가 길잡이 역할을 하자"고 화답했다. 이 자리에서 남북은 2003년 평양 친선전 이후 15년만의 남북통일농구 부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입장의 세부사항에 합의했다. 7·4공동성명을 계기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기로 한 남북통일농구경기는 큰 의미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관성 있게 추진했던 남북 교류와 평화의 전령으로서의 스포츠 교류가 또 한번 구체적 성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 문제에 있어 정부는 분명한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관 주도가 아닌 민 주도의 추진이다. 큰 틀에서 화두를 던진 만큼 실제 단일팀 구성의 과정은 각 해당 단체의 자율적 의지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지난 5월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정부가 아닌 탁구인 주도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이 모범 사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잡음도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또 하나의 성공사례가 알차게 영글고 있다. 이번에는 카누다. 대한카누연맹이 다시 한 번 단일팀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아시안게임을 넘어 미국에서 열릴 세계대회까지 단일팀을 구성해 참가하겠다는 뜻을 공식화 했다.
대한카누연맹은 19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남북 단일팀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연맹은 남북 단일팀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 2018년 드래곤보트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계획을 밝혔다.
카누는 아시안게임 단일팀 출전이 가장 유력한 종목이다. 18일 남북체육회담을 통해서 "일부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참가한다"는 합의의 중심에 카누가 있다. 카누 용선은 아직 국가대표 선수가 구성돼 있지 않아 형평성에 문제가 없는 종목이다. 연맹 역시 일찌감치 단일팀을 위한 여러가지 준비를 해왔다. 남측 선수단은 남자 8명, 여자 8명으로 선발을 마쳤다. 북측에서 참가할 16명의 선수를 비워둔 엔트리 명단이다.
김용빈 대한카누연맹 회장은 "카누 용선이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단일팀이 평화를 위해 함께 했었다. 그 시작을 보고 연맹은 단일팀을 추진했다. 또한, 국제카누연맹(ICF)과 아시아카누연맹(ACC) 등에서 단일팀에 대한 적극 지지를 받았다"면서 "6월 30일까지 남측 엔트리를 먼저 제출할 예정이다. 이후 북한이 명단을 채울 것이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도 엔트리에 대해 예외 사항을 인정해줬다"고 밝혔다.
이미 선수 구성을 마친 남측과 달리 북측의 진행 상황은 알 수 없는 상황. 다만, 김 회장은 "북측 엔트리 확정은 7월 초로 예상하고 있다. 중순부터는 같이 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팀 구성에 대해 '일부 종목'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카누로 알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종목이 카누라는 부분을 북측에 전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를 통해 북측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잘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남북 단일팀을 추진 중이다. 김 회장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ACC, ICF와 함께 세계선수권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을 했고,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서안을 보내 북한 선수들의 미국 비자 발급이 가능하도록 요청하려고 한다"고 했다.
함께 자리한 토마스 코니에츠코 ICF 부회장, 나리타 쇼켄 ACC 회장도 남북 단일팀을 적극 지지했다. 코니에츠코 부회장은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하게 돼서 감사하다. 한국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스포츠가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이 참가하고, 미국에서 다시 함께 만난다면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리타 회장은 "용선은 최대 12인승의 배다. 거기에 큰 꿈을 싣게 돼서 영광이고, 꿈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돼서 큰 기쁨이다. 단일팀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용선은 드럼을 치면서 분위기가 올라가는 대회다. 단일팀이 구성된다면 분위기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하는 대회인 만큼 더 좋은 의미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대표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선수들도 부푼 꿈을 안고,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남자부 신성우(충북도청)는 "처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됐는데, 단일팀이라는 영광스러운 기회에 함께 하게 돼서 기쁘다. 선수단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아시안게임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겠다.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부 이예린(한국체대) 역시 "단일팀으로 출전하게 돼서 영광이다. 역사적인 순간에 주인공이 됐다는 게 기쁘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겠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좋은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농경사회였던 동양에서 용은 물의 신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로 신성시 돼 왔다. 본격적 물꼬를 튼 남북 체육교류. 하나됨의 선봉에 용선(드레곤보트)이 있다. 고수의 웅장한 북소리에 맞춰 남북 선수들이 힘껏 노를 젓는 모습. 평화를 향한 힘찬 전진이 상상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