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하다 보면 이럴 때가 있다. 너무 잘 하려고 덤비면 오히려 망치고, 망치지만 말자고 했는데 너무 잘 되는 경우다.
주말골퍼의 기본 목표는 파 세이브, 투어프로의 목표는 버디다.
높게 잡은 목표가 하나둘씩 어긋날 때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지는 기분. 한번쯤 느껴봤을 법한 경험이다.
목표를 보수적으로 잡는 것도 썩 괜찮은 전략이다. 그냥 '보기 플레이만 하자'는 편안한 마음(물론 통상 이조차 쉽지만은 않지만…). 이러고 나갈 때 오히려 술술 잘 풀릴 때가 있다.
"이 코스에서 기록이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하는 것에만 집중에 또 집중을 했다."
제147회 디오픈 깜짝 우승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6·이탈리아)의 말이다. 이전까지 메이저 우승이 없었던 선수. 주목 받는 선수도 아닌데다, 좋은 기억의 대회장도 아니었던 몰리나리. 그의 목표는 '노보기 플레이'였다.
3라운드 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최종 라운드에서는 파 세이브에 중점을 두겠다"고 공언했다. 전략은 최종라운드 플레이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무려 13개홀 동안 파 행진을 벌이며 타수를 지켰다. 위기가 찾아와도 아이언 샷과 쇼트게임, 그리고 정교한 퍼트로 리커버리에 성공했다.
"오늘 미스 샷이 좀 있었다. 하지만, 세컨 샷과 어프로치 샷으로 잘 리커버리를 해서 오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오늘 보기 없이 경기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으면 미스샷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티샷에서 미스샷이 하나 나온 순간 이미 '망친 홀'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이미 집중력이 크게 흐트러진다. '골프는 실수의 스포츠'임을 감안하면 스스로의 마음을 지나치게 엄격한 목표의 감옥 속에 가두는 건 바람직 하지 않다.
하지만 목표가 '보기만 하지 말자' 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수 해도 희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세컨드 샷에서 '이 샷만 잘 치면'과 '이 샷을 잘 쳐도'의 서로 다른 생각이 만들어 낼 확률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몰리나리는 두번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대가는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었다.
때 마침 불어온 강풍도 몰리나리 편이었다. 비, 바람 등 자연환경이 도전적일 때는 공격적 골프보다 지키는 골프가 유리하다.
10번홀 까지 단독 선두에 나서며 우승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타이거 우즈(43·미국)는 몰리나리와 반대였다. 화려했지만 특정 홀에서 연속 실수를 했다. 11번홀(파4)에서 세컨드 샷과 로브샷 어프로치 실수가 연거푸 이어지며 더블보기를 범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여파는 다음홀에도 미쳤다. 12번홀(파4)에서도 보기를 범하며 연속 2홀에서 3타를 잃고 결국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메이저대회 15번째 우승을 아쉽게 놓친 우즈는 경기 후 이런 말을 했다.
"몰리나리의 오늘 경기는 매우 훌륭했다. 그의 경기는 완벽했다." 힘든 환경 속에서 이뤄낸, 자신이 하지 못한 경쟁자의 노보기 플레이에 대한 진심어린 찬사였다.
반면, 결정적인 순간 평정심과 함께 우승을 날려버린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혹평했다.
"오늘 나의 플레이에 약간 화가 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선수들이 우승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즈 처럼 모든 것을 다 이룬 골퍼 조차 라운드를 통해 배운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 그 앞에 선 인간, 그 존재의 가벼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용기와 겸허함이 필요한 이유다. 오늘도 골프는 삶의 거울로 끊임 없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