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을 땐 즐겨라.
마운드 위의 투수. 때론 난감할 때가 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자니 맞을 것 같다. 피해갈 방법이 없다.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실제 남이 보는 나는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는 나보다 실제 현실의 나는 훨씬 나은 존재다. 박차고 나갈 자신감이 필요한 이유다.
마운드 위의 투수도 마찬가지. '내 생각보다 내 공이 좋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감이 실리면 같은 스피드라도 볼끝의 힘이 달라진다. 그래야 비로소 무시무시한 타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다.
137㎞.
삼성 투수 백정현이 2일 롯데전에 찍은 최고 스피드다. 개막에 맞춰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과정.
하지만 그는 피해가지 않았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타자들과 맞서 싸웠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일 일본 오키나와현 온나 아카마 구장에서 열린 LG전에 선발 등판, 4이닝 동안 41개를 던지며 5안타 1실점했다.
선발투수의 성패는 1회에 좌우되기 쉽다. 그런 면에서 백정현은 현명했다. 1회를 공 6개로 마쳤다. 이형종과 오지환을 각각 초구에 플라이와 땅볼로 처리했다. 3번 김현수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조셉을 2구만에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닝을 마쳤다. 2회도 8개로 끝냈다. 정해진 투구수에서 4이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비결이다. 타순이 한 바퀴 돌 때까지 1번부터 8번 타자에게 초구는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빠른 결과가 나왔다.
"그저 공격적으로 던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 타자들이 빠르게 나온 것 같습니다."
이날 백정현은 구석구석을 찌르는 코너워크와 패스트볼과 구속 차가 큰 변화구를 적절히 섞은 완급조절이 돋보였다.
선발 투수는 100여개의 공을 저장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일찌감치 다 쓰면 일찌감치 내려오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날 백정현의 투구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시즌 초 토종 선발진에 살짝 불안감이 감도는 삼성 마운드를 감안하면 13년 차 베테랑의 공격적 호투가 반갑다.
'어깨가 무겁다'는 말에 "몸이 무거운 것 같다"며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투수. 그가 지키는 삼성 마운드가 든든하다.
"시즌 내내 꾸준하게 던져 우승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 하는 성실파 투수. 마운드 위에서 즐기는 방법을 깨닫고 있다.
오키나와(일본)=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