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초심을 되새긴 '개그콘서트'가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신관에서는 KBS2 '개그콘서트' 1000회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빛나는 역사와 별개로 침울한 '개그콘서트'의 현실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 현장에는 개그계 대선배인 전유성과 김미화를 비롯해 김대희, 유민상, 강유미, 신봉선, 송중근, 정명훈, 박영진까지 '개그콘서트' 역사의 산 증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원종재, 박형근 PD도 함께 했다.
'개그콘서트' 엔딩곡이 한주의 마무리이자 월요병의 시작이던 시절이 있었다. '개그콘서트'는 방송 첫 해인 1999년 연평균 시청률 16.3%를 기록하며 신세대 코미디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개그콘서트'의 전성기였던 2002년과 2003년 시청률은 무려 23.6%와 28.9%였다. 이후에도 '개그콘서트'는 크고 작은 부침 속에 14.2%(2008년)에서 22.3%(2012년)을 오가며 일요일 예능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개그콘서트'는 추락을 거듭했다. 2015년 11월 21일 사상 첫 한자릿수(9.9%)이 나왔고, 2016년에는 연평균 10.0%를 가까스로 지키는데 그쳤다. 특히 2016년 4월 이후 갤럽 여론조사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톱 20에서 권외로 밀려났고, 2018년 이후 평균 시청률은 6%를 밑돌기 시작했다. 2018년 9월 16일에는 4.7%라는 충격적인 숫자를 기록했다.
방송시간도 한때 110분까지 확장된 바 있지만, 현재는 90분 미만까지 줄어들었다. 시청률 면에서 동시간대 교양프로그램인 KBS1 '역사저널 그날'과도 큰 차이가 없다. '개그콘서트' 역대 최다 출연이자 수장 역할을 해온 김준호조차 내기 골프 파문으로 하차한 뒤론 어두운 터널이 더욱 길어지는 모양새다.
'개그콘서트' 하락세의 문제는 뭘까. 방송 환경 변화로 인한 시청률 하락을 지적하기엔, 동시간대 '미운 우리 새끼(SBS)'는 연일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중이다. 이날 간담회의 좌장 격이었던 전유성은 '개그콘서트'의 현실에 대해 "나태하고 식상한 개그 때문"이라며 뜻밖의 냉정한 관점을 드러냈다.
전유성은 "코미디 발전을 위해 힘쓰는 것은 공영방송의 책무"라고 강조한 제작진과 달리, 후배들에게 "잘 버텨라"고 격려하면서도 "있어야하는 프로그램은 없다. 시청자가 재미없다 생각하면 없어지는 게 맞다. 재미있으면 당연히 오래 간다. '어떻게 웃길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유성이 꼬집은 '초심'은 이날 간담회의 백미였다. 전유성은 "난 처음 TV(유머1번지)에서 인기있는 개그를 대학로로 가져가서 공연했다. 이후 '개그콘서트'는 대학로에서 하던 걸 다시 지상파로 가져온 것"이라며 "그땐 공연에서 검증이 끝난 코너를 TV에 선보였다. 그런데 점점 공연장의 검증 없이 제작진이 재미 여부를 결정해서 바로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태하고 식상한 개그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는 것"이라고 매섭게 꼬집었다.
전유성은 "현장에서 재미있게 잘 하던 친구들이 방송국 들어오면 '야 그거 재미없어 고쳐'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 때문에 그만둔 좋은 친구들이 많아 아쉽다"고 강조하는가 하면, "'개그콘서트'의 PD가 숱하게 바뀌었는데, 나한테 '어떻게 하면 좋겠냐' 묻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그러면서 700회에나 한번 부르고, 1000회에 또 부른다. 나한테 상의를 좀 해주면, 저도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보태보겠다"며 무대에 오르는 희극인들을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도 지적했다.
대부분의 후배들이 몸을 사린 가운데, 전유성의 거침없는 토크는 인상적이었다. 이에 신봉선도 나섰다. 신봉선은 "희극인들이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게 아니다. 여전히 아이디어는 많다. 지상파 방송에 녹이는 게 어렵다"면서 "전 '개그콘서트'를 나갔다 왔다. 요즘은 이렇게 밖에 못하나, 생각했는데 돌아오고보니 개그에 제약이 너무 심하다. 내가 활동할 때 재밌었던 인기 코너, 지금은 못 올린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원종재 PD는 "초창기 '개그콘서트'는 신선하고 새로운 코미디였다. 20년 지났다. 매주 시간에 쫓긴다. 기대에 못미친다. '최선이 고작 이거냐' 하시면 당장은 그렇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른바 '비하적 코미디'에 대한 질문에는 "요즘 못생긴 개그맨은 뽑지 않는다. 잘생기지 않은 친구들은 메리트가 없다". 코미디적으로 몸과 얼굴이 장점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면서 "과거의 가학적이고 출연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코미디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되는 코미디는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김대희는 '개그콘서트' 1회부터 함께 해온 김준호를 회상해 눈길을 끌었다. 김대희는 "개그콘서트 첫 방송 때 김미화 선배가 36세였다. 지금 제가 46세다. 20년이 순식간에 흘렀다"면서 "10회쯤 됐을 때, 말할 수 없는 1명(김준호)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1000회'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이 자리를 그와 함께 할 수 없어 아쉽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개그야'도, '하땅사'도, '웃찾사'도, 'SNL'도 없는 지금 '개그콘서트'는 '코미디빅리그'와 더불어 사실상 단 둘 뿐인 메이저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오는 19일 1000회, 올해 9월 방영 20주년을 기점으로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열심히 하겠다", "응원해달라"가 아닌 '재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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