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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독보적 통찰력"…송강호, '영화적 동지이자 친구' 봉준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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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예술가로서 늘 고민하고 각성하는 배우가 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바른손이엔티 제작). 극중 백수가족의 가장 기택 역의 송강호가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넘버3'(1997)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박찬욱, 이창동, 김지운 등 충무로의 대표 거장 감독들과 함께 수많은 걸작을 내놓은 명실상부 충무로를 대표하는 최고 배우인 송강호. 단 한 번도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은 완벽한 연기만을 선보여온 그가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를 함께 한 최고의 영화적 동반자인 봉준호 감독의 다시 한 번 관객을 놀라게 할 준비를 마쳤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가 함께 한 네 번째 영화인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중 송강호는 생활고 속에서도 가족애가 돈독한 전원 백수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았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을 연기했던 최근작들에서 느껴졌던 시대의 무게를 내려놓고 허술하고 사람 좋은 백수를 연기한 그는 미세한 표정 변화와 뉘앙스의 전환만으로 긴장과 페이소스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관객을 스크린으로 끌어당긴다.이날 송강호는 "어제 시사회에서 드디어 국내 첫 선을 보였는데, 마음이 정말 조마조마했다. 칸은 둘째 치고 어제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국내에서 '기생충' 첫 선을 보이게 되는거라 정말 긴장이 많이 됐다. 다행히 저녁에 진행된 가족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며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송강호의 인터뷰에 앞서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칸 심사위원장이 송강호 배우에 대한 언급 하면서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명이었는데 영화가 너무 만장일치로 황금종려가 결정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우주연상을 줄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하며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에 취재진이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해 아쉽지 않냐"고 질문을 던지자 송강호는 "전혀 아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봉 감독님께서 시상식 끝나고 심사위원과 수상자들끼리 하는 뒷풀이를 가셨다. 그 이후에 저에게 심사위원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귓속말로 전해줬다. 저는 끝까지 감추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인터뷰로 다 말하셨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는 "저는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 작품으로 받은 상으로 우리 모두가 다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한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밀양', '박쥐'로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바 있는 송강호. '밀양'은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고 '박쥐'는 박찬욱 감독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안긴 바 있다. 이에 송강호는 앞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내가 칸에 가면 함께 간 작품이 상을 받는 전통이 있다. 이번에도 그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기자들이 "수상 요정"이라고 말하자 송강호는 "천만 요정은 들어봤어도 수상 요정은 처음 들어 본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어 "제작보고회 때 반신반의로 내가 가면 우리 작품이 상을 받는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터져버려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이날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과 1997년 첫 만남을 떠올렸다. 봉준호 감독이 '모텔 선인장' 연출부였을 당시 만나서 처음 이야기를 나눠봤다는 그는 "그 만남 이후 봉준호 감독이 아주 예의바르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제 삐삐에 장문의 말을 남겨 놨다. '지금은 연이 안 되지만 언젠가 당신과 좋은 기회에 만나서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듣고 정말 이렇게 배려 넘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분은 앞으로 뭐가 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가장 특별한 점에 대해 묻자 "흔히들 '봉테일'이라고 하는데, 그건 현상적인 부분이다. 본질은 봉 감독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봉준호 감독은 누구도 갖지 못한 세상에 대한 통찰력과 세상에 대한 비전이 있다. 정말 독보적인 부분이다"며 "봉준호 감독님의 기술적이고 테크닉적인 면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봉 감독님의 가진 가장 예술적으로 위대한 부분은 통찰력이다. 봉 감독이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제가 한참 우러러보게 만드는,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고 덧붙였다.

'기생충'은 송강호가 강조했던 봉준호 감독의 통찰력이 눈부시게 빛나는 작품. 송강호는 "'기생충'이 계급에 대한 이야기,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 봉준호 감독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냄새나 선 같은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타인에 대해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다. 그런 편견이 곧 계급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현상 밑에 가장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존엄이다"고 덧붙였다.봉준호 감독과 함께 하며 누구보다 즐겁게 작업했다는 송강호는 "봉 감독님께 '내가 좀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봉준호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으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연기해도 다 받아줄 것 같고 다 조율이 될 것 같고 그래서 정말 신이 났다. 10명의 배우들이 누구하나 소외되는 캐릭터가 없이 자기 몫이 다 있고 그러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평상시에는 정말 친한 친구이자 동지다. 봉 감독은 정말 웃기고 유머러스하다. 후배들도 봉준호 감독을 보고 어쩜 저렇게 편안할 수 있을까 라며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봉 감독과 처음 작업을 한 젊은 배우들은 정말 깜짝 놀란다. 봉준호라는 거장 감독이 굉장히 예민하고 현장도 날이 서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봉준호 감독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봉 감독을 잘 몰랐던 배우들은 봉 감독을 떠올리며 천재 감독들 특유의 어떠한 예민한 광기를 떠올리는데, 봉 감독에게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봉 감독은 현장에서 큰소리 한번 안내고 다 배려한다. 정말 밥 때도 잘 지켜준다"며 웃었다.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배우인 송강호는 '충무로에 자존심' '무조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들에 대해 언급하자 "주위의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제 스스로는 어떤 수식어에 갇히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제가 아무래도 후배들이 많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니까 좋은 의미와 느낌을 주는 배우이고 싶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영화를 하면 무조건 관객을 많이 동원한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기보다는 송강호라는 배우가 예술가로서 늘 고민하고 각성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드리고 싶다"며 "비록 어떨 때는 흥행에도 실패할 수 있고 또 잘될 수도 있다. 연속으로 잘 될 수도 있고 연속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건 배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항상 각성하는 행보를 걷는 배우라는 것만은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 송강호는 '기생충'이 이룩한 성광에 대해 "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들을 하겠지만 세월이 지나서 '기생충'이 남긴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것 같다. '기생충'이 남긴 한국영화의 중요한 업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