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정현석 기자] "아닙니다. 팀이 승리해서 기쁩니~다."
29일 잠실구장. 승리 투수가 될 뻔 한 두산 투수 유희관(33)이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답한다. '승리를 자꾸 놓쳐 어쩌냐'는 말에 대한 익살스러운 반응이다.
조명이 꺼져 어둑해진 잠실구장 1루쪽 덕아웃. 취재진에 둘러싸인 그는 조명 대신 환한 웃음을 던졌다.
유희관은 최근 2경기 연속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였다. 리드를 잡은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불펜이 지켜주지 못했다. 23일 수원 KT전 7이닝 5안타 무실점, 29일 잠실 삼성전 7⅓이닝 6안타 무실점. KT전은 자신의 승리 뿐 아니라 팀도 역전패 했다. 삼성전은 그나마 10회말 김재환의 끝내기 홈런으로 팀은 3대2로 이겼다.
지난 7일 KIA전 이후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16일 삼성전 2회부터 22⅓이닝 무실점 행진. 하지만 그 기간 추가한 승리는 단 1승 뿐이다. 시즌 2승3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평균자책만 2점대(2.91)로 진입했다.
유희관도 사람이다. 당연히 승리를 챙기고 싶다. 하지만 인생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야구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선발 최고참으로의 짊어져야 할 책임도 무겁다. 밝은 분위기 속의 인터뷰 중간 중간 슬몃 스치듯 지나가는 아쉬운 표정,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다.
2-0으로 앞선 두산의 9회초 마지막 수비. 마무리 함덕주가 심상치 않았다. 무사 2,3루 위기. 유희관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안으로 들어갔다.
"못 보겠더라고요. 표정 관리할 자신이 없고…. 재환이 끝내기 치고 나서 뛰어나왔어요.(웃음)"
유희관은 대인배 형님이다. 자신의 승리를 날린 후배 함덕주 걱정부터 한다. "덕주가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늘 나가서 맛있는 것 사주려고요. 고기 좀 먹여야죠."
돈을 쫓는다고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 사람에 투자할 때 비로소 붙는다. 선발 투수에게 승리도 같다. 안달복달 쫓는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선후배 동료를 먼저 배려할 때 보은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함덕주가 이 악물고 유희관 선배의 승리를 굳게 지켜줄 날이 머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