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정현석 기자]두산 선발 유희관(33)은 최근 가장 뜨거운 투수 중 하나다.
연일 눈부신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 시즌 첫 완투승을 거둔 16일 삼성전 2회부터 3경기에 걸쳐 22⅓이닝 무실점 행진중, 지난 7일 KIA전 이후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다. 비록 승운이 없어 2승(3패)에 그치고 있지만 평균자책점은 2.91로 톱10 안에 든다.
삼성 선발 윤성환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제 몫을 해주고 있다. 9경기에서 2승2패 3.54의 성적. 지난 8일 대구 NC전에서는 5년 만에 깜짝 완봉승까지 거뒀다. 9경기 중 단 한번도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경기가 없다. 자책점 4점 이상은 단 1차례(5이닝 4실점) 뿐이다. 안정된 흐름이다.
KT 금민철도 다소 기복은 있지만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1승3패 5.00의 방어율을 기록중이다.
이들 베테랑 3명 투수들의 공통점은 바로 '느림의 미학'이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는 선발투수들 중 가장 느린 볼을 던지는 선수들.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이 130㎞ 안팎에 불과하다. 윤성환과 유희관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각각 131.2㎞와 128.8㎞. 금민철의 컷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29.1㎞다.
느려지만 통한다. 스피드 보다 절묘한 로케이션와 타이밍 싸움으로 타자를 제압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올시즌 더욱 잘 던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피홈런이 확 줄어든 덕분이다. 유희관은 지난해 141이닝을 소화하며 23홈런을 허용했다. 올해는 65이닝에 단 2개 뿐이다.
윤성환은 스피드가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117⅓이닝 동안 28홈런으로 프로데뷔 후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했다. 올시즌은 53⅓이닝 동안 3개에 불과하다.
금민철은 지난해 156⅓이닝 동안 19홈런을 맞았으나, 올해는 45이닝 동안 3개 만을 기록중이다.
제구와 타이밍 싸움으로 맞혀 잡는 유형의 투수에게 홈런은 가장 큰 적이다. 지난해 처럼 비정상적으로 홈런이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는 편안하게 던질 수가 없다. 생존 자체가 어렵다. 투수 코치들은 입을 모아 "투수가 장타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코너워크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오히려 그러다 보면 공이 가운데에 몰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악순환이다.
반대로 홈런 부담을 덜면 선순환 고리가 생긴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던질수록 코너 제구력은 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윤성환은 완봉 후 "올해 가장 달라진 점은 편안함"이라고 했다. 그는 "스피드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했다. 오치아이 코치님도 제구력을 더 신경쓰라고 하셔서 쫓기는 마음 없이 편안하게 던지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뚝 떨어진 공인구의 반발력 감소 여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희관은 "전체적으로 점수가 안 나는 것 같긴 하다. 투수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줄어든 공의 반발력이 느리지만 정교한 투수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는 셈. 홈런 부담이 줄어드니 허를 찌르는 직구 승부도 늘었다. 유희관은 "직구 비중을 높이면서 변화구가 더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