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제7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스포츠조선·조선일보·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가 한창이던 8일 서울 목동구장.
예기치 못했던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김경문 감독이었다.
얼핏 생각해도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 방문. 오는 11월 열리는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준비에 한창인 국가대표팀 사령탑. 고교 야구 대회 현장 방문은 이례적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평소 잠실구장 등 프로야구가 열리는 현장을 자주 찾는다. 이달 말 80여명의 예비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한번이라도 더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눈에 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은 마침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었다. 하루 쉴 법도 했건만 김 감독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목동구장을 향했다. 의외의 행차? 아니었다. 평소 행보의 일환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프로야구단 사령탑 시절부터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꿈나무에 관심이 많았다. 그 관심은 국대 사령탑이란 막중한 책임을 맡은 이후 더 커졌다. 지나가는 길에도 야구부가 있는 학교가 보이면 불쑥 들러 선수들의 운동 모습을 지켜볼 정도다. 집 근처 배명고 등이 대표적인 장소다.
김 감독은 "어린 학생들이 한국야구의 미래"라고 입버릇 처럼 이야기 해왔다. 이날 목동야구장 방문도 같은 맥락이었다. 한명의 선수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의 신화를 이끈 명장.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 선수들을 한 마음으로 모은 김 감독의 지도력 덕분에 당시 '베이징 키즈'가 대거 탄생했다. 이번에 김 감독이 뽑을 국가대표 엔트리 중 상당수는 바로 베이징올림픽을 보며 꿈을 키운 선수들이다.
김 감독이 방문한 날, 목동구장은 무척 더웠다.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장마 속에 일찌감치 시작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 수은주는 33도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이날 낮 경기는 뙤약볕 아래서 열렸다.
목동구장 지열이 고스란히 어린 선수들의 몸을 후끈하게 달구던 상황.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 속에 선수들은 승리를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살기 위해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김 감독은 "저 날씨에 베이스 근처만 가면 슬라이딩을 한다"며 학생 선수들의 패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걱정 어린 눈길도 있었다. 김 감독은 세밀함이 부족한 선수들의 동작을 매의 눈으로 잡아냈다. 간혹 궤도에서 이탈한 플레이를 보면 "기본기가 조금 부족해 보인다"며 우려 섞인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운명의 11월을 앞두고 옥석가리기에 한창인 김 감독은 평소 대표팀 구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여러 우려 섞인 시선에도 한결 같이 "우리 선수들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똘똘 뭉쳐서 잘 해낸다"며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면에 말 못할 고민이 없을 리 없다. 외국인선수 천하 속에 토종 에이스급 선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고교야구를 비롯한 한국야구의 척박한 인재 풀에 있다. 대표팀 사령탑 임기를 떠나 선배 야구인으로서 한국야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목동구장 깜짝 방문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야구를 시작하는 꿈나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한국야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표팀 김경문 감독의 고민은 맞닿아 있었다.
목동=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