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뼈가 세 번 부러져도, 정신(멘탈)이 나가도 다시 일어섰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이야기를 할 때 상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계속 눈빛이 흔들린다.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일부러 시선을 멀리 돌리며 말을 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제주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고향'처럼 생각했던 옛 홈구장에 돌아온 남준재(31)가 꼭 그랬다.
18일 인천 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2019년 하나원큐 K리그1' 26라운드 경기가 0대0으로 비긴 뒤였다. 리그 순위표에서 가장 밑에 있는 인천(11위)과 제주(12위)의 맞대결이었다. 꼴찌 탈출을 노리는 제주나 10위 탈환을 노리는 인천 모두 승점 3점이 간절한 경기였다.
그런데 정작 이 경기는 전혀 다른 면에서 주목받았다. 물론 경기가 싱겁게 0대0 무승부로 끝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경기 중에 나온 인천 서포터즈의 매몰찬 반응이 더 화제였다. 인천 서포터즈는 이날 유독 한 선수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야반도주'라는 걸개도 나왔다. 마치 철천지 원수를 만난 사람들 같았다. 심지어 그 선수가 따로 찾아와 인사를 했을 때도 야유는 줄어들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을까. 그리고 그 선수는 대체 무슨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일까.
그 선수는 바로 6월까지 인천의 '캡틴'이었던 남준재다. 남준재는 지난 7월 4일 김호남과 1대1 맞트레이드를 통해 제주 유니폼을 입게 됐다. 트레이드 이전까지 남준재는 그 누구보다 인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레전드급' 선수였다. 인천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중간에 잠시 다른 팀들을 옮겨 다녔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팀을 위해 헌신했다. 인천이 '잔류왕'이라는 별명을 얻게된 데에 남준재의 기여도는 매우 컸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날 경기장을 찾은 인천 서포터즈는 남준재를 마치 '배신자'로 취급하며 갖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들이 화가 난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남준재가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실로 믿는 일부 팬들의 입장에서는 남준재가 위기에 빠진 팀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정확한 팩트라고 하기 어렵다. 감독 교체 이후 팀내 입지가 급격히 줄어든 남준재 측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보려 한 건 맞다. 하지만 실제로 트레이드가 급작스럽게 이뤄지게 된 건 구단이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남준재는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공식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현 K리그의 트레이드 관련 독소 조항에 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때문에 사안을 좀 더 폭 넓게 보고 성숙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날 경기장의 인천 서포터즈는 그렇지 못했다. 트레이드의 저변에 깔린 복잡한 사정을 다 저버리고 단순히 '남준재가 인천을 버렸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자기들의 팀을 지켜온 선수를 모욕하는 행동을 저질렀다. 너무나 매몰차고 편협한 선긋기처럼 보인다. 이런 행동에 대해 타구단 팬은 물론이고, 인천 팬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남준재는 이날 경기 후 애써 울음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팀에 모든 걸 바쳐서 헌신했다고 생각했는데, (야유가 나와) 상당히 아쉽고 선수로서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남준재는 인천 팬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쳐주신 팬들도 있어서 감사하다. 어제 어떤 팬분이 메모지에 '고마웠다'는 내용의 편지를 적어주셨다. 야유를 받을 때 그 편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도 서포터즈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게 선수로서의 내 도리라고 생각한다"면서 "팬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그 부분만 알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준재의 진심은 인천 서포터즈의 야유를 더욱 보잘 것 없게 만들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