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도쿄올림픽 보이콧? 스포츠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

by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지난 2일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한 이후 8월 내내 반일, 극일 논쟁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아베 정권의 독단적 결정에 항의하는 '재팬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스포츠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컬링, 배구, 농구 등 일부 종목에서 일본팀 초청을 철회했고, 일본 전지훈련을 줄지어 취소했다. 하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까지 불거진 가운데 '그래도 스포츠 교류는 지속돼야 한다'는 냉정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그 후, 한일 스포츠 교류 현장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직후 컬링, 배구, 농구 등 일부 종목에서 보이콧 움직임이 거셌다. 경기도청과 춘천시청 여자컬링팀이 1~4일 삿포로 월드컬링투어 훗카이도은행 클래식 출전을 취소했고, 강릉시는 16~18일 한중일 여자컬링 친선대회에 일본 초청을 취소했다. WKBL(여자농구연맹)은 24일 개막하는 여자농구 박신자컵에 일본팀 초청을 철회했다.

프로구단들의 일본 전지훈련 보이콧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녀프로농구, 여자프로배구 구단들이 일본행을 줄줄이 취소했다. 통상 마무리 캠프를 일본에 차렸던 프로야구의 경우, LG 트윈스가 일본 대신 이천 챔피언스파크를 선택했다. 나머지 팀들은 여전히 고민중이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진행되는 교육리그(일본과 한국 프로팀 2군, 젊은 선수들이 참가하는 리그) 참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내년 스프링캠프도 고민이다. 지난해 NC 다이노스, KT 위즈, 키움 히어로즈 등 3팀이 미국, 나머지 7팀은 일본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렸다. 롯데 자이언츠와 LG는 2차 전훈지로 일본을 택했다.

프로축구 K리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북 현대, 광주FC, 수원FC가 일본 동계전지훈련을 실시했고, 울산 현대, FC서울 등은 2차 훈련지로 일본을 택했다. 취재 결과, 전북과 울산은 일본을 전지훈련 선택지에서 일단 배제했다. 2007년 귀네슈 감독 시절부터 '괌-가고시마' 전지훈련을 고수해온 서울의 경우 '기존 계획을 아직 취소하진 않았으나 플랜B도 검토중'이다.

그러나 한일 청소년들의 스포츠 교류는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지난 7일 목포에서 열린 동아시아 U-15 여자축구 페스티벌에선 한일 여중생 대표들의 맞대결이 뜨거웠다. 30일 부산 기장에서 개막하는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 일본대표팀이 참가한다. 어린 선수들이 일본과의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아마 종목 스포츠 교류도 원활하다. 2~8일 한국의 초청으로 대전에서 한일청소년하계스포츠교류전이 진행됐고, 16~22일까지 일본의 초청으로 교토에서 동일한 교류전이 진행중이다. 23일 중국 장사에서 열리는 한중일 주니어종합경기대회엔 10종목에서 동아시아 3개국 청소년들이 기량을 겨룬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한일 청소년, 민간교류와 각종 대회들은 수년째 이어져온 양국 체육인간의 약속이다. 최근 관계 경색과 무관하게 스포츠맨십에 입각한 동아시아 미래 세대들의 교류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올림픽 보이콧' 논쟁, 스포츠의 창을 닫아선 안된다

광복절 전후 한일간 경색국면 속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도쿄올림픽 보이콧'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동근 더불어민주당의원이 가장 먼저 '올림픽 보이콧'을 거론했다. 악화일로의 한일관계뿐 아니라 후쿠시마 방사능 안전 문제를 집중제기했다. 야당 의원들은 선수보호,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 원칙을 내세워 '보이콧'에 반대하고 있다.

올림픽 최초의 보이콧은 1956년 호주 멜버른 대회에서 있었다.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반발해 참가를 거부했다.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은 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 운하 침공에 항의, 불참했다. 1964년 도쿄 대회엔 IOC와 자격 논란으로 대립한 북한,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3개국이 불참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때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발, 아프리카 34개국이 불참했다. 동서 냉전이 첨예하던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선 미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불참했고, 한국을 포함해 미국의 우방 66개국이 동참했다. 이어진 1984년 LA 대회에선 모스크바 불참 보복으로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 15개국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1988년 서울 대회 땐 북한, 쿠바 등 7개국이 불참했다. 전쟁과 차별, 이념이 이유가 됐고, 단 한 나라만 보이콧한 경우는 없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한 바 없다"는 공식입장을 전했다. 오히려 도쿄올림픽조직위에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할 말을 하겠다는 분위기다. 20~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단장 회의에서 공식 홈페이지 지도에 명시된 독도 표기 시정과 선수들을 위한 방사능 안전 검증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감정에 치우친 올림픽 보이콧은 득보다 실이 많다. 선택지가 다양한 전지훈련 보이콧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심지어 다른 NOC의 공감을 얻지 못한 단독 보이콧은 영향도 미미하다. 2032년 남북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면서, IOC의 최대 이벤트인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하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종목이 올림픽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출전 여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유도, 태권도, 양궁, 체조 등 한국의 메달 기대 종목 대부분은 일본과 겹친다. 한국선수들의 불참시, 일본선수들만 쾌재를 부를 일이다.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출전권을 따내야 한다.

일제시대 고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한국인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듯이,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 혼신의 레이스 후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던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고다이라처럼 지난 4년간 피땀 흘린 선수들이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신과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는 것이말로 진정한 '극일'이다.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 '강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경제 보복 조치와 도쿄올림픽을 통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든 간에, 대한민국 스포츠와 우리 선수들은 강하고 행복해야 한다.

국민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SBS가 광복절 실시한 관련 여론조사에서 '도쿄올림픽과 정치 연계는 옳지 않고 국제 여론도 우려돼 보이콧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1.3%에 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도쿄올림픽을 직접 언급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 한마디 속에 모든 해법이 들어 있다. 스포츠는 평화의 길을 연다. 정치, 경제의 문은 닫히더라도, 스포츠의 창문까지 닫아서는 안된다. 지난해 평창올림픽에서 스포츠를 통해 남북 평화의 창을 열었듯, 도쿄올림픽을 통한 한일 관계의 창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