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이쯤되면 '복덩이'란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판을 뒤흔드는 '정복자'의 출현이다.
LG 트윈스 외인타자 로베르토 라모스가 연일 폭발력 넘치는 홈런을 터뜨리며 단번에 KBO리그를 접수했다. 라모스는 지난 24일 잠실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입단 이후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7-9로 뒤진 9회말 1사 만루서 KT 김민수의 131㎞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끌어당겨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라인드라이브 대포를 터뜨렸다. LG 선수가 끝내기 만루포를 날린 것은 2009년 로베르토 페타니지 이후 11년 만이며, 구단 역대 5번째다. 끝내기 만루홈런은 KBO리그 통산 20호이며,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은 통산 8번째다.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으니, LG로선 라모스를 앞세워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셈이다.
라모스는 장타 관련 부문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25일 현재 타율(3할5푼) 12위, 홈런(7개) 1위, 타점(16개) 공동 4위, 출루율(0.443) 9위, 장타율(0.767) 1위, OPS(1.210) 2위, WAR(1.55) 2위에 올라 있다. 시즌 초이기는 하지만, LG 타자가 공격 주요 부문, 특히 장타 부문 정상권에 오른 것은 주목할 사건이다.
LG 차명석 단장은 라모스 영입을 발표한 지난 1월 "건강, 장타력, 선구안을 고루 갖춘 타자"라고 했다. 지난해 콜로라도 로키스 산하 트리플A에서 30홈런과 출루율 4할을 올린 점을 강조했다. 최근 3년 연속 풀타임을 활약했다면 건강도 확신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세 부분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침착한 성격과 동료들과의 소통도 만족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타자라도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LG 류중일 감독은 최근 라모스의 약점에 대해 "높은 공에 방망이가 쉽게 나가는 것 같다. 스윙 궤적이 낮은 공을 잘 퍼올리는 스타일인데, 그런 스윙은 높은 공에 약할 수 있다"며 "상대팀도 이를 간파할텐데, 잘 대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라모스가 이날 날린 만루홈런도 몸쪽으로 낮게 파고드는 공이었다. 홈런 7개 가운데 허리 이상의 높은 공을 때린 것은 없다. 반면 삼진 13개 중 7개는 높은 코스에 휘두른 헛스윙 삼진이었다.
라모스는 지난 22일 KT전 3번째 타석부터 이날 홈런을 치기 전 4번째 타석까지 11타석에서 볼넷 1개만 얻었을 뿐 10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개인의 위기와 팀 운명이 맞물린 상황에서 최상의 타격을 보여줌으로서 '클러치 능력'도 한껏 과시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른 팀들도 라모스 분석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즘 LG 경기를 보면 포수 뒤쪽 본부석에 자리잡은 각 구단 전력분석팀이 라모스 타격에 집중 주시하는 걸 볼 수 있다. 한 지방 구단 전력분석 관계자는 "처음에 생각했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유인구 대처 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보통 처음 온 용병들은 변화구나 낮은 공에 약하고 헛스윙을 많이 하는데 라모스는 그렇지 않다"면서 "분석을 좀더 해야 한다. KBO리그 역대 최고 수준의 타자가 될 수도 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앞으로는 더욱 까다로워질 상대의 볼배합에 라모스가 어떻게 대처하는 지가 관전 포인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