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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현장]'부담 백배' 속 첫승 백정현, 후배 박승규를 끝까지 기다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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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개막 후 3~4연패 하면 엄청 쫓기거든요."

투수 전문가 키움 손 혁 감독은 10일 대구 삼성전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

시즌 초 투수의 준비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요키시의 초반 선전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나온 흘러나온 이야기.

"첫 한달 간 4~5승을 해놓으면 시즌 내내 여유가 생기죠. 최근 20승을 달성한 투수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그 반대 상황으로 언급한 것이 연패 중인 투수의 조바심이었다.

이날 선발 맞대결을 펼친 좌완 요키시와 백정현의 상황이 꼭 그랬다.

요키시는 이날 경기 전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6경기 5승무패, 평균자책점 1.49. 리그 정상급 활약이었다.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었다. 5월12일 삼성 전 이후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 중이다.

백정현은 반대였다. 시즌 초반이 힘겨웠다. 3경기 전패로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10.29였다.

FA 자격을 얻는 시즌. 겨우내 준비를 철저히 잘했다. 시즌 전 컨디션도 좋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늦춰지면서 스텝이 꼬였다. 밸런스가 살짝 흐트러졌다. 의욕이 넘치면서 종아리 부상이 왔다.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절치부심 25일 만의 복귀전. 운 마저 따르지 않았다.

4일 잠실 LG전은 악몽이었다. 선발 4이닝 14피안타 3탈삼진 11실점(8자책). 수비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대량 실점으로 이어졌다. 이날 따라 초저녁 어스름이 겹치면서 외야수들이 잇달아 뜬 공 궤적을 놓치며 우왕좌왕 했다.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 첫 승이 미뤄지면서 부담감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설상가상 10일, 리그 최고 요키시를 상대로 만났다. 부담과 외로움으로 점철됐던 백정현의 4번째 선발 등판. 생각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았다. 주인공은 까마득한 후배 박승규였다. 이날 2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박승규는 1회 1사 후 첫 타석에서 좌중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요키시에게 시즌 첫 피홈런을 선사한 데뷔 첫 홈런. 경기고를 졸업하고 2019년 2차 9라운드 82순위로 입단한 고졸 2년차. 이 홈런 한방으로 삼성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불리한 여건에서 외롭게 마운드에 오른 백정현에게 이 선취점은 큰 힘이었다.

공격 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1-0으로 앞선 2회초 2사 1루에서 김혜성의 안타성 타구를 전력질주해 다이빙 해 잡아내는 슈퍼 캐치로 이닝을 마감했다. 도저히 미치지 못할 거리를 앞으로 점프하면서 글러브 끝에 공을 구겨 넣었다.

평소 이닝을 마치면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백정현이 걸음을 멈췄다. 신바람이 나 뛰어오는 12년 후배를 기다렸다. 데뷔 첫 홈런볼에 슈퍼캐치까지 싱글벙글 박승규가 대선배 백정현의 "고맙다"는 짧은 인사 속에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어린 후배의 공-수 지원에 힘을 불끈 낸 백정현은 6이닝 2안타 무실점 역 투로 드디어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시즌 최고 피칭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백정현에게나, 데뷔 첫 홈런과 호수비로 펄펄 난 박승규에게나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경기 후 백정현은 박승규를 찾아 한마디 툭 던졌다.

"니 덕분에 이겼다."



대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