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정진영 감독이 첫 연출작 '사라진 시간'에 대해 말했다.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조진웅)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사라진 시간'(정진영 감독, ㈜비에이엔터테인먼트·㈜다니필름 제작).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정진영이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황산벌'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택시운전사' 등 상업영화와 '클레어의 카메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예술·독립영화, '보좌관', '화려한 유혹' 등 드라마, 시사 교양 프로그램 진행까지 33년 동안 전방위적 활약을 펼쳐온 관록의 연기파 배우 정진영. 영화계에 몸담으며 오랜 시간 연출의 꿈을 품어왔던 그가 직접 각본까지 쓰며 심혈을 기울이며 준비한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첫 연출 도전에 나섰다.
'사라진 시간'은 하루아침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신선한 설정과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스토리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미스터리 속으로 끌어당긴다. 미스터리의 중심에 놓인 형구라는 인물을 통해 타인이 규정하는 삶과 자신이 바라보는 사람, 그 간극에 놓인 사람의 고독과 외로움을 신선하게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끝난 후에도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든다.
이날 정진영은 연출을 도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연출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지만 긴 시간 배우로 살았고, 연출할 능력이 안 된다고 스스로 평가했기에 도전하지 않았었다. 4년 전부터 용기를 낸 거다. 내가 영화를 만들었다가 망신당하면 어떨까라는 겁도 있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어찌되었든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률 감독님이나 홍상수 감독님의 독립 영화 출연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걸 하면서 영화라는 게 거대 작업이 아니라 적은 자본으로도 정성과 진심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렵지만 행복한 작업이었다"며 "며칠 끙끙 대며 글을 쓰다가 풀리는 순간 쾌감이 있었고 촬영하는 순간도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후반 작업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배우면서 하는 과정이 행복했다. 하지만 개봉을 앞두니까 굉장히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연출을 할 수 있게 자극을 준 감독이나 배우가 있냐는 질문에 정진영은 "물론 많은 감독님과 배우들을 존경하는데, 제가 연출의 꿈을 스물스물 갖게 된 게 '화려한 유혹'이라는 드라마 이후부터다. 그때 김창완 선배와 연기를 했는데, 김창완 선배님이 자극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선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줄 알았는데, 여쭤보니 대학교 때 기타를 배우셨다고 하더라. 본인은 비틀즈도 안들어서 내가 원하는대로 음악을 한다고 말씀하시더라. 굉장히 놀랐다. 저런 훌륭한 아티스트가 대학교 때 음악을 시작해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싶었다"며 "저는 제가 체계적인 연출 학습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겁을 냈던 부분이 있다. '초록물고기'를 할 때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부 막내로 참여하긴 했지만, 사실 막내가 무엇을 해봤겠나. 그런데 김창완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용기를 낼 수 있던 계기다"고 설며했다.
영화를 만들 때 작법이나 스토리텔링 면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를 좋아한다. 뭔가 논리를 뛰어넘는 기운을 좋아한다. 하지만 뭔가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진 않다. 이 영화도 논리적으로 펼친 이야기가 아니라 기운을 이어받아서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영화다. 어떤 누구의 스타일을 따라가려고 했던 건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제가 '사라진 시간' 이전에 썼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스스로 놀랐다. 굉장히 소재를 관습적으로 익숙하게 펼쳐나가더라. '내가 왜 이렇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그래서 결국 그 시나리오를 버렸다. 새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어디에도 사로잡히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흉내 내지 말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보자 했다. 기존의 시나리오 작법이나 익숙한 것으로 달려가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가보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진영 감독이 메가폰을 '사라진 시간'에는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신동미, 이선빈 등이 출연한다. 오는 18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