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제주도 살려낸 남기일 감독 "3번의 승격, 내겐 큰 자부심"

by

[제주=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3번째 승격, 뿌듯하고 자부심 있다."

'승격 청부사', '승격 전도사'. 이 사람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있을까.

남기일 감독이 또 해냈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1일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20 서울 이랜드전에서 3대2로 승리, 남은 충남 아산전 결과와 관계 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K리그1 다이렉트 직행. 남 감독은 2014년 광주FC, 2018년 성남FC를 2부에서 1부로 끌어올리더니 지난해 난파선이 됐던 제주까지 살려냈다.

승리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 스포츠조선이 남 감독을 만나 지난 한 시즌 제주에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축구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확실했다. 그리고 K리그1 승격에 만족하지 않고,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우승, 승격이 실감이 나는지.

▶아직 실감이 안난다. 선수들과 기념 회식도 하고, 시즌이 완전히 끝나야 그 때 가서 실감이 날 듯 하다.

-광주, 성남에서는 승격은 했어도 우승은 못했었다.

▶맞다. 그래서 우승이 굉장히 기쁘다. 구단에서 좋은 스쿼드를 유지해주셨기에 가능했다. 감사하다. 또 우리가 K리그2로 떨어졌어도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신 팬들께도 감사하다. 이게 우승으로 연결된 힘이다.

-벌써 3번째 승격이다. 본인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각 팀들마다 목표가 있다. 나는 승격도 좋지만 그 목표들을 이뤄왔다는 것에 뿌듯하다.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3번의 승격, 큰 의미가 담긴 것 같다. 3개의 다른 팀을 승격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승격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지만 한 마디로 하면 정말 어렵다.

-'승격 청부사'라는 닉네임을 달고 제주에 오게 돼 부담은 없었나.

▶처음 감독직 제의가 왔을 때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셨다. 물론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었다. 나와 함께 하는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 분들의 도움 덕에 해낼 수 있었다. 나도, 구단도 K리그1에 올라가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함께 가자는 마음이 잘 모였다.

-돈 잘 쓰는 기업 구단 감독이 돼 기대가 크기도 했을텐데.

▶광주, 성남을 거쳐 시민 구단의 어려움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업 구단 감독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제주에 온 결정적인 이유였다. 올시즌을 통해 투자한만큼 성적이 더 잘 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투자를 통해 축구를 더 활성화 시키는 팀들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제주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선수들의 자신감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웃지를 않더라. 무서운 감독이 와서 그런가.(웃음) 선수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길을 못찾는 듯 보였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주인공이 되려면 다 힘들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건 주인공이다. 힘든 과정들이 자양분이 돼 여러분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개막 후 부진했다. 주장 이창민은 '올해도 포기해야 하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나도 많이 힘들었다. K리그2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다. 선수들이 K리그1과 다른 경기 템포에 어려움을 겪었고, K리그2 각 팀들이 감독을 많이 바꿔 서로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었다. 나도, 선수들도 당황했다.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첫 승을 거둔 부천FC 원정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부천전부터 선수들이 편안하게 뛰더라. 이기려고 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걸 하기 시작했다. 당시 3전승이던 부천을 이기며 선수들의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상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렀다.

▶좋은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힘이 된다. 하지만 우리 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데, 외국인 선수들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국내 선수들의 스쿼드도 괜찮았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즐거워하며 뛰었다. 호흡이 정말 좋았다. 새로운 선수가 들어가면 그 선수가 잘하게 도와주고, 그 선수는 기존 동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열심히 뛰었다. 그 힘으로 외국인 선수 부재를 이겨냈다. 사실 시즌 중반 새 선수를 영입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상무에서 전역해 돌아오는 선수들(진성욱 류승우 이찬동)고 함께 하고 싶었다.

-공민현, 이동률, 진성욱, 임동혁 등 어려울 때마다 깜짝 스타들이 튀어나왔다. 감독의 힘인가.

▶(웃으며) 아니다. 선수들이 잘해줬다. 모두에게 기회를 줄 수 없다. 하지만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가 굉장히 좋았다. 어떤 선수 하나 팀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다. 부상, 징계 등으로 주전 선수가 빠질 때 들어가는 선수들이 알아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창민, 정조국 등이 분위기를 잘 잡아줬다.

-특별히 고마운 선수들이 있는지.

▶모두 고맙다. 주장 이창민도 생각나고, 안현범도 오승훈도 권한진도 고맙다. 선수 전원을 언급해도 될만큼 잘해줬다. 무엇보다 고마운건 선수들의 희생이다. 우리 선수들은 자기 색깔이 강했다. 능력은 좋은데,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창민이 가진 걸 내려놓고 동료들을 빛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안현범도 마찬가지다. 조연 역할을 했지만, 결국 주연이 될 거라고 얘기했다. 선수들이 이 부분을 잘 따라와줬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 선수는 누구인지.

▶이동률과 진성욱. 깜짝 놀랐다. 이동률은 원래 키워보고 싶은 선수 중 하나였다. 잘 키우면 제주의 자산이 되겠다 생각했다. 베테랑도 당연히 팀에 필요하지만,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시즌 중후반 상대 라인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선수를 찾고 있었는데, 원하는 시기에 맞춤형 선수가 딱 나타나줬다. 진성욱도 상무 제대 후 주민규가 부상을 당했을 때 투입돼 필요할 때마다 골을 넣어줬다. 외국인 선수가 없어 골을 못넣을 거라는 평가를 잠식시켜줬다.

-이겨도 웃지 않고 늘 무게를 잡고 있는 남기일 리더십에 관심이 많다.

▶한 경기만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는 2부에 있을 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면 누군가 계속 긴장해야 한다. 그게 감독이 할 일이다. 골 넣고 이기면 기분 좋지만, 앞으로 더 중요한 일들이 이어지기에 그 뒤만 생각한다. 그래서 잘 웃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골 넣으면 좋아서 웃는데, 올헤는 마스크에 가려 잘 안보였던 것 같다.

-우승 확정 후 곧바로 내년 시즌 대비 선수 보강 얘기를 했다.

▶올해 초에도 구단이 원하는 선수들을 많이 영입해주셨다. 매우 감사하다. 내년 시즌도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하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선수단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선수를 영입하고, 기존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동시에 써야 한다. 팀이 멈추면 안된다. 계속 변화해야 한다. 선수 영입은 구단과 잘 얘기하고 생각을 맞춰야 하는 부분이다. 외국인 선수, 국내 선수 모두 보강이 필요하다.

-K리그1에서 다시 싸우게 된 소감은.

▶K리그1으로 돌아가도 흔들리지 않는 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계속 발전하고, 단단한 팀이 돼야 한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겠다.

-특히 작년까지 지도했던 성남과 만나면 기분이 남다를 듯 하다.

▶성남이 2018년 어렵게 승격했다. 성남이 강등 당하지 않기를 응원했다. 그래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다. 승격을 하며 팀이 단단해졌기에, 버틸 수 있다고 봤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서 응원했다. 내년 성남과 만나게 되면 남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이건 광주도 마찬가지다. 축구의 일부분이다. 서로간의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승격 청부사' 이미지로만 굳어지지 않으려면 K리그1에서도 좋은 성적이 필요하다.

▶승격 청부사, 전도사 다 좋다. 그러나 내가 가장 뿌듯한 건 팀들이 원했던 목표를 이뤘냈다는 것이다. 제주의 내년 목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목표를 위해 뛸 것이다.

-감독 남기일의 마지막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있다. 물론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은 못드린다. 다만 감독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빠르게 변한다. 이 흐름에 감독이 따라가지 못하면 안된다. 내가 가진 틀 안의 축구를 고집하면 발전이 없다. 그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올해 기업 구단 제주에서 기회를 얻어 내 역량을 마음껏 펼쳐봤다고 생각한다. 구단에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꿈꾸는 그림을 앞으로도 계속 그려나갈 것이다.

제주=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