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너무 많이 졌다. 후배들한테 눈총 받게 하고, 자부심을 주지도 못하고…선배로서 미안한 마음 뿐이다."
송광민(37)은 담담했다. 데뷔 15년차, 오롯이 한화 이글스에만 바쳐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독수리'가 아니다.
시즌을 마친 직후지만, 송광민은 정신없이 바쁘다. 송광민은 오는 12월 6일 결혼한다. 하지만 다시 확산세를 보이는 코로나19 때문에 결혼 준비가 난망이다. 드레스와 한복을 맞추는 등 조심스럽게 준비중이다. 8개월 난 아들의 감염을 우려해 웨딩촬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 준비 외에도 김장, 연탄 배달 등 지역 봉사활동 일정이 가득하다. 한화와의 이별을 생각도 못했기 문이다. 송광민은 "오늘 김장 100박스를 하고 왔다.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면서도 "지금 상황을 신경쓸 겨를이 없어 차라리 잘 됐다"며 웃었다.
송광민은 대전 토박이다. 공주고-동국대를 거쳐 지난 2006년 한화에 입단한 이래 15년간 원클럽맨으로 뛰었다. 1군 통산 성적은 1060경기 타율 2할8푼6리 1029안타 111홈런 530타점. 특히 한화가 11년만에 가을 야구에 올랐던 2018년에는 타율 2할9푼7리 18홈런 79타점의 호성적을 거두며 팀 승리를 지원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타율 2할3푼5리 홈런 9개 4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52에 그쳤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9월에는 타율 2할7푼6리 3홈런 15으로 반등 했지만, 11월 들어 폼이 무너지면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방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송광민 스스로도 아직 현실이 어색하다. 그는 "다른 팀에서 연락 오길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한화에서만 뛰어봐서 다른 팀 사정을 알아볼 사람이 별로 없다"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참 오래 뛰었다. 봉사활동 하면서도 사람들하고 같이 사진 찍고 하는데, '한화 응원 많이 해주세요' 하고 다녔다. 한화가 앞으로 잘했으면 좋겠다. 은퇴한 뒤로는 또 한화를 응원할 거다. 대전에서 태어났고, 내 고향이고, 빙그레 야구를 보면서 컸고, 내 집도 여기 있다. 그 마음은 변할수가 없다."
송광민은 지난 6일 '세대 교체와 쇄신'을 강조한 정민철 단장과의 면담에서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았다. 송광민 외에 이용규(키움 이적) 최진행 안영명 김회성 윤규진 등에 은퇴한 김태균 송창식까지. 주요 베테랑들이 줄줄이 정리됐다.
방출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송광민은 "올해 우리 팀이 너무 많이 졌다.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 "구단의 리빌딩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강조했다.
송광민은 방출 후 구단에 이별 선물로 떡을 돌렸다. 그는 "과일로 할까 하다가 떡으로 바꿨다"면서 "그냥 마음을 전하는 의미에서 몰래 주려고 한 건데, 누가 찍어서 커뮤니티에 올리는 바람에 기사도 나고 만인이 다 알게 됐다. 봉사활동도 원래 몇년째 소리소문없이 하던 건데…"라며 민망해했다.
한화를 떠나는 송광민의 눈에 밟히는 것은 어린 후배들이다. 송광민은 "지난 6월에 2군을 갔다. 죽기살기로 뛰는 후배들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내려갈 때는 '올 것이 왔구나'하는 심정이었다. 매일 계속 질 때니까. 그런데 내려가서 보니 '이 친구들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선배들이 잘해서 이기는 야구를 했어야되는데, 신인들의 동기부여가 될만한 자부심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시즌 막판은 재미있었다. 고춧가루도 제대로 뿌렸고, 그 과정에서 내가 팀 승리에 보탬이 되서 좋았다. 내년엔 한화가 많이 이겼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후배들 좋은 기사도 많이 나오지 않겠나."
송광민은 이제 새 팀을 찾고 있다. 구단과의 면담에서 은퇴 이야기도 나왔지만, 송광민은 "1년이라도 선수로 더 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일단 몸을 만들어놓으려고 한다. 미리 운동 일정도 잡아놓고, 닭가슴살이랑 단백질 보충제도 사놨는데…지금 그만두긴 많이 아쉽다. 16일부터 운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개인 훈련 열심히 하고 있겠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