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단독] "윤여정→김희애, 언니들 건재해"…문소리, 어려움 속 유독 빛나는 여왕의 품격(청룡영화상)

by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걸크러시의 정석을 보인 멋진 언니 문소리(47)가 청룡영화상에서 19년 만에 의미 있는 수상으로 2021년을 완벽하게 완성했다.

문소리는 지난 1월 개봉한 휴먼 영화 '세자매'(이승원 감독, 영화사 업 제작)에서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을 연기했다. 겉으로는 독실한 믿음을 가진 성가대 지휘자이자 나무랄 데 없는 가정주부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어릴 적 쌓인 상처로 고통받는 캐릭터 미연을 있는 그 자체로 소화한 문소리. 특유의 흡입력 있는 연기로 '세자매'의 중심을 이끌었다.

이러한 문소리의 열연은 지난 11월 26일 열린 제42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으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는 극찬을 받은 문소리는 이견 없는 올해 최고의 여배우로 손색이 없었다.

스포츠조선과 만난 문소리는 "곱씹어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운 시기에 유독 빛을 발하는 배우인 것 같다(웃음). 올해 오랜만에 도전한 MBC '미치지 않고서야'도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세자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까지 거두며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내게 된 것 같다. 특히 '세자매'는 너무 예산이 적게 들어간 영화라 개봉 당시 버틸 힘도 없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는데 연말에 사랑을 받고 인정도 받고 여러 곳에서 축하도 받으니까 헛헛한 마음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다. '세자매'는 정말 시간을 견딘 작품이 됐다. 함께한 배우, 스태프들 모두 '우리부터 작품의 힘을 믿자'라며 서로 다독였는데 그 다짐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감사하다"고 수상을 자축했다.

그는 "청룡영화상은 특히 더 수상 기대를 안 했던 시상식이었다. 앞선 사례를 보면 청룡영화상은 매번 예상을 빗나가는 파격의 수상 결과가 종종 있지 않았나? 게다가 올해는 후배들인 전종서, 전여빈 등이 너무 연기를 잘했다. 또 김혜수 선배도 '내가 죽던 날'(20, 박지완 감독)에서 너무 좋은 연기를 펼쳤자. 정말 올해는 특히 더 누가 받아도 좋을 주연상 후보들이었다"고 웃었다.

이어 "주연상 시상 전 조연상이에서 '세자매'의 김선영이 상을 받길래 주연상 수상은 더욱 마음을 접었다(웃음). 장윤주에게 '윤주야, 우리는 홀리뱅, 오마이걸 무대만 보고 집으로 가자'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예상도 못했던 여우주연상을 내가 받게 돼 깜짝 놀랐다. 또 나의 수상에 주변 지인들이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시상을 하게 된 라미란과 류준열, 그리고 함께 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설경구 오빠까지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마음이 전해졌다. 내가 지인들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안긴 것 같아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충무로 걸크러시다운 쿨하고 화끈한 수상 소감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문소리는 "전혀 예상 못했던 수상이라 소감도 준비를 못했다. 얼떨떨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가 선영이와 윤주를 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어갔는데 내 수상 소감이 감사하게도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평이 있더라. 한 스피치 콘텐츠 전문가는 내 수상 소감을 위트와 배려, 적절한 메시지가 담긴 '베스트 소감'이라고 칭찬해주더라. 소감에서 잠깐 언급했던 단편영화에 데뷔한 엄마 이향란 여사님도 무사히 촬영을 끝냈다. 남편 장준환 감독이 내게 장모의 대본 연습을 어찌나 부탁하던지, 시상식이 끝난 뒤 엄마의 대본을 맞춰보기도 했다. 다행히 엄마도 촬영을 즐겼고 그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고 온 것 같아 안심하고 있다"고 안도했다.

문소리는 수상의 기쁨도 잠시 반려견 달마를 떠내 보내야 했던 슬픔의 시간도 견뎌야만 했다. 그는 "사실 수상 후 기쁨과 상실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청룡영화상이 열리기 전 지난 9월에 낸 책 '세발로 하는 산책' 북토크를 다녔다. 15년간 함께한 반려견 달마를 생각하면서 쓴 짧은 에세이인데 한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북토크를 다니기도 했다. 각별했던 달마였는데 청룡영화상이 끝난 뒤 달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많은 사람들이 달마의 명복을 빌어주고 위로해줬다. 수상도 있었지만 내겐 달마를 보내는 시간을 가졌다"고 곱씹었다.

'세자매'의 문소리는 연기뿐만 아니라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제작자로서 가능성 또한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단편 '최고의 감독' '동행'으로 감독에 데뷔했고 이후 2017년 첫 장편 연출작 '여배우는 오늘도'로 감독의 역량을 인정받으며 멀티테이너로 주목받았다. 이번 '세자매'도 시나리오에 공감해 출연부터 영화 전반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문소리는 "'세자매'를 프로듀싱하고 출연을 했을 때 많은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누가 봐도 돈이 되는 작품이 아니었고 개런티도 정확한 출연료가 아닌 영화의 지분으로 받았다. 주변에서는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굳이 바쁜 사람이 이런 것까지 하냐'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나는 돈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세자매'를 택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찾았고 또 청룡영화상 수상처럼 나와 우리 영화를 응원해주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멍청한 생각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내가 좋아하고 빠져있는 일에 열심히 한다면 언젠가는 공감받는 때가 온다. 청룡영화상은 그걸 다시 확인하게 해 준 계기다. 딸 연두에게도 이런 엄마의 모습이 잘 전달될 것 같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문소리에게 '세자매'는 인생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통을 안긴 문제작이기도 했다. 문소리는 "'세자매'에서 내가 연기한 미연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정말 징글징글한 캐릭터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미연이라는 캐릭터에 많이 부대꼈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이 비록 악역이라도 사랑해줘야 하는데 나는 미연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탐탁지 않더라. 너무 이해가 되서인지 너무 싫기도 했다. 내게도 미연이와 같은 모습이 있는데 내가 가진 모습 중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라서 더 싫고 답답하기도 했다. 이런 캐릭터,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촬영하는 동안은 어떤 작품보다 행복했다. 1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너무 잘 맞는 배우들, 좋은 이야기,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까지. 분위기 좋은 현장이었고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문소리에게 이번 청룡영화상이 특별한 이유는 비단 '세자매'뿐만이 아니었다. 19년 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안긴 '오아시스'(02, 이창동 감독)의 파트너, 설경구의 남우주연상 수상도 기쁨을 배가시켰다.

문소리는 "'오아시스' 커플의 수상을 특히 축하해줬다. 설경구 오빠와 옛날 생각도 나고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나와 설경구 오빠 모두 살갑고 애교 있게 감정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워낙 친한 사이이기도 하고 축하도 서로 낯간지러워한다. 그런데 이번엔 좀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서로 얼싸안지는 못했지만 악수로 마음을 전했다. 설경구 오빠가 너무 기쁜 나머지 내 손목이 부서져라 악수를 하더라. 그 악수에서 설경구 오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떠올렸다.

이어 "또 인상적인 축하는 전여빈이었다. 사실 올해 청룡영화상에 참석한 배우들 중 가장 행복했던 배우는 전여빈과 구교환이 아닌가 싶다. '메기'(19, 이옥섭 감독) 때 교환이와 호흡을 맞추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 서로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다. 여빈이는 시상식이 끝나고 엄청 긴 장문의 축하 메시지를 보내줬다. 그리고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가장 좋았던, 잊을 수 없었던 대목은 윤여정 선생님이었다. 한국 영화계 어른인 여정 선생님의 말에 나를 비롯해 많은 영화인이 힘을 얻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소리는 "올해 많은 도전을 했다. 드라마부터 '세자매', 그리고 OTT 플랫폼 작품도 시작했다. 도전과 성취의 해를 보낸 것 같다. 또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는 장준환 감독과 결혼한 지 15주년이 된다. 인터뷰를 오기 전 장준환 감독과 통화를 했는데 '15주년이 됐는데 앞으로 나와 함께하실 생각이 있느냐'라고 장난스레 물었더니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아직도 밀당을 하더라. 우리 두 사람 모두 15년을 함께한 세월이 신기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언니들이 아직 많다. 대표적으로 윤여정 언니도 계시고 고두심 언니도 있다. 김혜숙 언니도, 김혜수 언니도 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 리딩 현장에 가니까 서이숙 언니, 김희애 언니도 계시더라. 그 현장에서는 내가 '특급칭찬' 받는 막내급이다(웃음). 이렇듯 충무로에는 언니들이 아직 건재하게 활약 중이다. 앞으로도 이런 언니들의 활약이 계속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답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