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모든 레이스는 결국 피니시라인을 통과해야 끝난다. 출발 직후 선두나 레이스 중간의 선전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마지막 결승선을 어떤 위치에서 통과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경마 한 경주는 인생의 굴곡을 반영하는 짧은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2년 만에 돌아온 역사와 관록의 장거리 승부, '제32회 스포츠조선배 대상경주'(4세 이상, 국산마 한정, 2,000m, R80이하, 총 상금 2억원)에서 또 하나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모두가 주목하던 우승 후보를 제치고, 레이스 후반 강력한 추진력으로 반전 드라마를 완성한 새 챔피언이 탄생했다. 바로 침체기를 이겨낸 '디터미네이션(5세, 수, R70, 청메이칭 마주, 서범석 조교사)' 그리고 부민호 기수였다.
디터미네이션은 20일 한국마사회 서울 경마공원에서 8경주로 열린 제32회 스포츠조선배에서 마지막 직전주로에서의 강력한 질주 본능을 앞세워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경주기록은 2분07초8. 2위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우승마로 예상했다. '치프인디',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말은 뜻밖의 '루킹굿'이었다.
스포츠조선배 대상경주는 국산 장거리 최강마를 가리는 전통의 대회다. 국산 4세 이상 우수마 중에서 장거리에 특화한 경주마를 선발하는 관문으로 경마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2년 만에 다시 팬들 앞에 선보이게 됐다.
그 사이 국산 장거리 레이스의 판도도 크게 바뀌어 있었다. 더불어 오랜만에 펼쳐지는 전통의 대회인 만큼 강자들이 대거 출전해 예상을 어렵게 했다. 일단 지난해 'KRA컵 마일(1600m)' 3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2000m)' 준우승을 기록했던 치프인디가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됐다. 또한 세 달 만에 출전이지만 6연승을 질주하고 있던 대한질주도 강력한 후보였다.
반면 우승의 영광을 안은 디터미네이션은 우승 예상마라기 보다는 반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다크호스'였다. 원래 디터미네이션은 2세마 시절, 장래가 촉망받는 신예였다. 하지만 2020년과 지난해 장거리 경주에 집중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3, 4세 시절의 성장세가 저조했다. 하지만 침체기를 묵묵히 견딘 '디터미네이션'은 최근 잠재력을 만개하며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전 3등급 경주에서 2연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고, 특히 부민호 기수와 뛰어난 호흡을 보여줬다. 2000m 유일한 도전이었던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에서도 4위를 거둔 경험이 있었다.
총 14마리가 출전한 이번 경주에서 디터미네이션은 13번을 배정 받았다. 초반 경주 전개에서는 최근 6연승을 거두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예상됐던 '대한질주'가 독주를 이어나갔다. 디터미네이션은 바깥쪽에서 치고 나오며 그 뒤를 따랐다. 대한질주가 앞서며 선두 그룹을 이끌었으나 디터미네이션 역시 목차까지 바짝 따라 붙으며 격차를 줄여나갔다. 마침내 4코너를 빠져 나와 직선 주로에서 디터미네이션과 부민호 기수가 승부를 걸었다. 대한질주와 치열한 승부. 계속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끌던 대한질주는 피니시라인에 다가갈수록 힘이 빠져 버렸다. 오히려 치프인디가 치고 올라와 디터미네이션과 우승을 다퉜다. 하지만 디터미네이션은 꿋꿋하게 선두를 지킨 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디터미네이션을 기승한 부민호 기수는 "2010년 럭셔리제왕과 스포츠조선배를 우승한 이후 12년 만에 우승의 연이 닿았는데 꼭 한 번 다시 우승하고 싶었던 만큼 이렇게 승리를 따내 기분이 좋다"며 "경주 전개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나 생각했으나 말이 워낙 힘이 좋아서 말을 믿고 외곽으로 돌면서 탔다"며 경주 전개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경주 직후 서울경마공원 오너스라운지에서는 스포츠조선 이성관 대표이사와 한국마사회 정기환 회장 등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우승 조교사와 기수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다.
과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