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내내 상대팀을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한다."
한화 이글스 우완투수 장민재(32)는 선발등판 경기가 끝나면, 다음 선발경기가 바로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집중해 경기를 마치면, 또 집중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와 경기 사이, 야구에 몰입한다. 마주해야할 상대팀 타자를 분석하고,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계획한다. 이런 과정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했다.
시즌 초 갑자기 선발투수로 역할이 전환됐다. 외국인 투수 라이언 카펜터와 닉 킹험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3년 만에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갔다. 아니러니하게도 팀의 위기가 한화 입단 14년차 장민재에게 선발 기회를 쥐어줬다. 장민재는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선발 후보로 거론된 적이 없다.
부담은 없었다. 잘하고 싶었고 자신이 있었다. 장민재는 "갑자기 선발을 맡게 됐는데 항상 선발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며 "조금 일찍 기회가 왔구나, 이제 보여줄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시즌 초반 한화는 선발진의 부진으로 허무하게 무너진 경기가 속출했다. 경기 초 선발투수가 난타를 당해 대량실점하면, 따라갈 동력을 상실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장민재는 묵묵히 선발 임무를 수행했다. 최근 7경기 중 5이닝을 책임진 게 5게임이다. 강력한 구위로 경기를 지배할 수는 없지만,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선발로 나선 8경기에서 2승2패, 평균자책점 4.58. 화려한 기록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2경기에선 10이닝을 던져 2실점했다.
"최근 국내 선발들이 5이닝씩 버텨주고 있다. 지더라도 어이없이 지는 경우가 줄었다. 투수들이 버텨주면서 타자들이 뒷심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장민재는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지명선수다. 지난 14년간 한화 선수로만 뛰었다. 현재 한화 선수 중 가장 오랫동안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팀이 힘을 때 베테랑 선수가 해야할 역할이 있다.
장민재는 "시즌 초반에 너무 자주지니까 선수들이 기가 좀 죽었다. 미팅할 때 내일도 게임을 해야 하고, 모레도 해야 한다.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오늘 졌다고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말자, 다음 경기, 그 다음 경기에 지장이 생긴다. 좀 더 힘을 내보자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최근 한화는 투타 모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어이없이 허무하게 내주는 경기가 줄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새 외국인 투수 2명이 이달 말에 합류해 '원투 펀치' 역할을 해준다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장민재는 "우리는 잃을 게 없다. 바닥을 쳐봤다. 다 잃어봤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조금 더 집중하고 씩씩하게 하면, 지금 보다 더 위로 갈 수 있다, 우리는 힘이 있다"고 했다.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 응원은 한화의 자랑이다. 대패를 눈앞에 두고 9회 안타 1개가 터져도 "나를 행복합니다"를 소리높여 부르는 팬들이다.
"팬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다. 지난번 수원경기 때 던지고 내려오는데 관중들이 내 이름 불러줬다. 엄청나게 힘이 됐다. 경기 끝나고 버스 타러 가기 전에 인사 한 번 더하고, 사인 요청이 있으면 정중하게 해 드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위로 올라가 팬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
장민재는 10일 원정 SSG 랜더스전에 선발 등판한다. SSG, 인천 문학야구장에 좋은 기억이 있다. 통산 24승 중 7승, 14선발승 중 6승을 SSG(SK 와이번스 포함)를 상대로 거뒀다. 또 문학 원정경기에서 4승(1패)을 올렸다. 매년 상대팀 전력, 구성이 달라진다고 해도 기분좋은 기록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