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최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선 '독수리협동조합'이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독수리'는 지난해부터 한화가 전개하는 자체 브랜드다. '협동조합'이라는 단어만 보면 다른 구단들이 그동안 진행해왔던 로컬 업체들의 구단 후원이나 연계 프로모션 정도를 떠올릴 만하다.
'독수리협동조합'은 대전 원도심에 터를 잡고 있는 여덟 곳의 가게 이야기를 소개하는 전시 프로젝트다. 62년 전통의 칼국수집부터 58년된 두부 두루치기, 47년을 이어온 갈비집 등 대전 원도심을 대표하는 상점 뿐만 아니라 젊은 감각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레트로 감성을 살린 커피숍, 서점, 뮤직 펍까지 다양한 가게가 망라돼 있다. '모두의 전성기-대전 원도심과 한화 이글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한화의 시각에서 원도심을 지키고 있는 여덟 가게를 바라본다는 취지다.
여덟 가게의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세월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원도심은 이들에게 과거의 자부심이지만, 동시에 매일 현실과 마주하며 도전해야 하는 공간이다. 자기만의 색깔을 지키면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전성기를 그린다.
'독수리협동조합'에서 그려진 여덟 가게의 이야기는 리빌딩 가시밭길을 걷는 한화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빙그레라는 간판으로 출발한 이글스는 창단 3년차(1988년)에 KBO리그 신생팀 최단 기간 한국시리즈 진출의 역사를 썼다. 그해부터 1992년까지 5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4번의 준우승을 일궜다. 한화로 간판을 바꿔달고 세대교체를 거쳐 1999년 4전5기, 비원의 V1을 달성했다. 이런 토대에도 한화는 최근 수 년동안 KBO리그 약체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레전드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난 뒤 방황을 거듭한 결과, 과거의 영광이 잊혀진 지 오래다.
올 시즌에도 한화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리빌딩 2년 동안 '우리만의 길', '우리의 시간'을 강조했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 연패를 거듭하며 아래로 향하는 성적,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리빌딩 성과 등 답답함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한화는 여전히 미래를 강조하면서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한화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추억하는 감성보다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냉철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철한 현실 진단도 과거의 유산, 본연의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열정 없이는 힘을 얻을 수 없다. 비록 힘든 현실 속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날개를 펴고 창공으로 비상하는 독수리가 되겠다는 다짐. 한화가 '독수리협동조합'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