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상상도 못한 초유의 재난 상황, 그 안에 갇힌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가 묵직하고 장엄하게 가슴을 울리는 새로운 항공 재난물이 탄생했다.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한재림 감독, MAGNUM 9 제작).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비상선언'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테랑 형사팀장 인호 역의 송강호,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오른 탑승객 재혁 역의 이병헌, 국민들을 지켜야 하는 국토부 장관 숙희 역의 전도연, 반드시 안전하게 착륙해야 하는 부기장 현수 역의 김남길,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공항에 온 승객 진석 역의 임시완, 비상사태를 맞이한 비행기 사무장 희진 역의 김소진, 청와대 위기롼리센터 실장 태수 역의 박해준, 그리고 한재림 감독이 참석했다.
'외계+인'(최동훈 감독) 1부,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감독)에 이어 올여름 텐트폴 세 번째 주자로 등판한 '비상선언'은 국내 최초의 항공 재난 영화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지난 2021년 열린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전 세계 씨네필에게 먼저 영화를 공개한 '비상선언'은 올해 1월 개봉을 준비했다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연기, 칸영화제 이후 약 1년간의 기다림 끝에 관객을 만나게 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대 속 베일을 벗은 '비상선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앞에 선 사람들 각각의 감정과 드라마를 담았다. 지금껏 보여왔던 수많은 재난물과 다른 결의 접근으로 신선함을 전한 '비상선언'은 이미 이륙한 비행기라는,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혼돈의 상황 속 불가피한 재난을 마주한 인간의 면면을 조망하 기존 재년물과 차별화를 뒀다. 재난을 맞닥뜨린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지나온 시간에 대한 공감과 위로, 그리고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숭고한 선택에 대한 의미를 전하며 묵직한 메시지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더불어 이런 메시지를 더욱 현실감 있게 빚어낸 리얼한 비행기 세트 또한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한국 최초로 대형 비행기 세트를 회전시킨 롤링 짐벌을 투입, 극한의 재난 상황을 더욱 공포감 있게 완성했다.
특히 '비상선언'은 지난 5월 개최된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를 통해 국내 남자 배우 최초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이에 앞서 2007년 열린 제60회 칸영화제에서 '밀양'(이창동 감독)으로 국내 여자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전도연의 재회는 물론 충무로 최고의 '명배우'로 손꼽히는 이병헌까지 가세한 완벽한 앙상블로 명품 열연의 참맛을 전한다. 세 사람은 '비상선언' 속 인물 그 자체로 변신, 보는 이들의 몰입을 높였고 여기에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대세 배우까지 '관상'(13) '더 킹'(17)의 한재림 감독의 지휘 아래 한데 어우러지며 황금 라인업의 품격을 입증했다.
이날 한재림 감독은 "비행기 안에 갇힌 사람들의 재난에 관심이 쏠렸다. 이 작품을 제안 받았을 때는 10년 전이었고 캐스팅을 할 때는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 촬영하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비상선언'에서 보여지는 특정한 재난이 아닌 재난 자체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더 많은 함의가 담긴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그는 "재난이 닥치면 인간은 두렵고 나약해진다.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 있지 않나? 위대한 희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사소한 우리의 인간성에 집중하다보면 재난을 조금씩 이겨내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영화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단순하게 블록버스터의 느낌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인물간의 감정을 통해 긴장감을 주기 위한 연출을 시도하려고 했다. 다양한 감정을 선사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해피엔딩으로 생각할 수도, 누군가는 '무슨 이야기지?'라는 의문을 갖기도 할 것이다. 재난에 더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 연출에 차이를 뒀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흔히 본 재난 영화, 장르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작업을 하면서 한재림 감독이 재난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지 어른스럽게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극적으로 전달하기 보다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런 재난이 벌어나서도 안되지만 대신 이런 재난 장르를 통해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가장 소중한 지점들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맡은 캐릭터 역시 담담하게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간절함과 절절함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전도연과 호흡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송강호는 "'밀양' 이후 많지 않지만 호흡을 맞춰 좋았다. 아무래도 '비상선언'은 남자 중심의 영화라 비중이 크지 않지만 보석처럼 빛난 존재감을 드러낸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전도연은 "송강호와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많이 호흡할 수 없었지만 한 작품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고 웃었다.
이병헌은 "실제로 20대 중반 비행기 안에서 공황장애를 겪어봤는데 이후에도 공황장애의 느낌과 증상을 여러 번 경험 했다. 그런 부분이 캐릭터에 어느 정도 표현된 것 같다"며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특유의 호흡법이 있다. 그런 호흡법이나 늘 가지고 다니는 약을 먹는 행위 등 낯설지 않더라. 내 실제 경험이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초유의 빌런 역할로 역대급 파격 변신에 성공한 임시완은 "작품을 선택할 때 캐릭터 행동의 당위성을 보고 선택한다.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당위성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대신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더 자유로울 것 같았다. 걱정보다는 기대감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재림 감독은 "미국의 라스베가스 총기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테러범의 기사들을 찾아보니 정말 평범하고 집안도 어렵지 않았다고 하더라. 친형은 범인이 총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더라. 그런 부분에서 영화 속 진석 캐릭터를 구축했다"며 "진석은 재난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비상선언'은 재난 속에서 살아난 사람들, 재난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희생자들의 가족들의 고통 등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떻고, 또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이 출연하고 '더 킹' '관상' '우아한세계'의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8월 3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