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투구수 71개.
1시간 넘는 우천 중단이 있었지만 12연패 중인 좌완 투수는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 물집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지난 1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시즌 12차전에 선발 등판해 눈부신 호투를 펼치고도 승리하지 못한 삼성 백정현 이야기다.
그는 연패 탈출과 함께 시즌 첫 승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초반부터 최고 139㎞의 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보더라인에 걸치며 홈런 2위 KT타선을 무력화 했다. 3회 내린 장대비로 무려 65분이나 경기가 중단됐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6이닝 3안타 4탈삼진 무실점. 올시즌 최고의 호투였다. 투구수 단 7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으로 앞선 7회말 불펜에 마운드를 넘겨야 했다.
우천 중단 탓이 아니었다.
불펜이 강하지 않은 삼성은 백정현 카드를 더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습한 날씨 속 공과의 마찰력이 커지면서 생긴 손가락 물집이었다. KT 선발 배제성도 우천 중단 뒤 재개되는 과정에서 피 맺힌 손가락 문제를 호소한 바 있다.
"살짝 무겁긴 했지만 더 던질 수는 있었는데 2회 손가락에 물집이 배겼어요. 던지면서 물집이 계속 커지면서 살이 찢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다음 등판까지 관리하기가 힘들거든요. 상태를 말씀 드렸더니 '여기까지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승리요건을 갖췄지만 마운드를 내려오기 무섭게 불펜진은 7회말 곧바로 2-2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설상가상 팀도 10회말 연장 승부 끝에 2대3으로 패하며 KT와의 2연전을 다 내주고 말았다.
팀으로서도 백정현으로서도 아쉬운 결과. 하지만 그는 평소 그 답게 의연했다.
"뒤에 올라왔던 투수들이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괜찮은데… 제 첫 승 때문에 야수들이나 뒤에 올라오는 투수들이 더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미안해요."
보살 같은 마음의 소유자. 변화가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동료들은 그의 진심을 안다. 기필코 첫 승을 안겨 부담을 덜어주려 더욱 집중하는 이유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과정은 빛났다.
특유의 칼제구가 살아나며 고질이던 피홈런도 볼넷도 없었다.
돌아온 2021년판 백정현. 완벽한 부활과 첫 승 신고가 머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