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산(미국 애리조나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지난 시즌 박영현(20·KT 위즈)은 '신인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마운드 위에서 좀처럼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신인으로 1군 무대 마운드에 서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쿵쾅 거릴 만도 한데, 박영현은 삼진을 잡아도, 안타를 맞고 점수를 내줘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이런 뚝심은 박영현이 데뷔 시즌 가을야구 엔트리에 포함되는 밑거름이 됐다. 박영현은 지난 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 생애 첫 가을야구에서 '천재타자' 이정후를 투수 앞 땅볼로 잡았다. 이튿날엔 팀이 2-0으로 근소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마운드에 올라 2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이날 세이브로 박영현은 KBO리그 역대 최연소 포스트시즌 세이브 기록(19세 6일)의 주인공이 됐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52경기 51⅔이닝 1패2홀드, 평균자책점 3.66. 신인으로는 적지 않은 이닝과 뛰어난 평균자책점을 거두며 1군 무대에 안착했다. 박영현은 "큰 경험을 했다. 불펜이라는 보직은 언제 어떻게 나갈 지 모른다.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배웠다"고 데뷔 시즌을 돌아봤다.
무표정한 마운드 위에서의 모습,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인 '돌부처' 오승환(41·삼성 라이온즈)이 배경이 됐다. 박영현은 "야구장 안에선 표정이 없지만, 바깥에선 변화가 크다. 야구장 안에서 만큼은 오승환 선배를 닮고 싶었다. 투구 폼은 따라할 수 없어 마운드에서의 표정을 유심히 봤는데, 그걸 보고 배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내 꿈은 마무리 투수였다. 초등학생 시절엔 (보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턴 선발 등판이 없었다. 경기 중간에 올라가니 야구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던 찰나에 오승환 선배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 아마 (마무리 목표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발 욕심은 전혀 없다. 오히려 불펜이 더 편하고 좋다"며 "고교 시절 선발도 해봤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더라. 불펜은 1이닝을 막는 과정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지키는 스릴이 있더라. 마무리 투수의 꿈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매년 좋은 경험을 쌓으면 꿈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KT의 미국 애리조나 캠프를 통해 박영현은 더 단단한 투수가 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최근 WBC 대표팀과 평가전에 등판했던 박영현은 "투구 폼 등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던지려 했는데 느낌이 괜찮더라. 실점에 관계 없이 다가올 경기들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여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팀 선배들이 '하루 잘 던졌다고 다음 경기가 없는 게 아니다. 못 던져도 내일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해주는데 그 말이 제일 와닿는다"며 "더 오래 잘 던지려 노력하고 싶다. 작년에 50이닝을 던진 만큼, 60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는 목표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활약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투산(미국 애리조나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