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스포츠조선 정재근 기자]황금장갑을 든 구자욱의 얼굴이 유난히 빛났다. '삼적화(삼성에 입단하면 산적 같은 외모로 바뀐다는 의미)'의 상징과도 같은 수염을 민 구자욱이 스무 살 미소년의 모습으로 골든글러브 시상식 무대에 섰다.
구자욱이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쏠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 황금장갑을 받았다. 2년 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 이어 두 번째다.
입단 때부터 훤칠한 키와 아이돌 같은 외모로 주목받았던 구자욱이지만, 정작 본인은 외모로 주목받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야구 선수는 야구 실력으로만 팬들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짙은 구레나룻으로 넥센 시절의 꽃미남 이미지를 버리고 삼적화의 표본이 된 선배 장원삼처럼 구자욱도 입단 후 서서히 삼적화의 길을 택했다.
꽃미남이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팬들의 눈으로 봤을 때 잘생긴 외모를 망친다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구자욱은 개의치 않았다. "야구만 잘한다면 삼적화는 두렵지 않다"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야구에만 쏟았다.
2023시즌 구자욱은 119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6/ 152안타/ 11홈런/ 71타점/ 12도루/ 출루율 0.407/ 장타율 0.494를 기록했다. 시즌 내내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NC 손아섭과 치열한 타율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구자욱은 1군 무대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2015년부터 9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15를 기록하고 있다. 2019시즌과 2022시즌에만 3할을 치지 못했고, 나머지 7시즌에서 3할을 넘겼다.
2022시즌 구자욱은 99경기 출전해 타율 0.293/ 5홈런/ 38타점으로 부진했다. 그래서 올해의 활약과 골든글러브 수상이 더 의미있다. 하지만 구자욱은 활짝 웃지 못했다. 8위에 그친 팀 성적 때문이다. 구자욱은 시상식 후 인터뷰를 통해 "박진만 감독님을 주장으로서 잘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했다. '팀보다 더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팀이 부진했는데 혼자 상을 받았다고 기뻐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누구보다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땀 뻘뻘 흘리며 훈련하는 구자욱, 시즌 중 그의 뇌 속에는 '외모 파트'가 없다.
한 해 농사를 마친 후 번듯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구자욱이 황금장갑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래서 더 빛났다. 수염에 가려졌던 잘생긴 외모가 10년 전과 변함없는 것에 놀랐다. '야잘잘'은 '야구 잘하는 선수가 잘생겼다'는 말의 줄임말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