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타수 32안타, 타율 4할2푼7리. 통산 '224승'을 올린 좌완 에이스를 상대로 거둔 성적이라는 게 놀랍다. 지난주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스즈키 이치로(52)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좌완 구도 기미야스(62)를 압도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 맞대결에서 타율 4할을 훌쩍 넘었다. 1998~1999년, 특히 강했다. 두 시즌에 거쳐 28타수 14안타, 5할 타율을 찍었다.
퍼시픽리그의 세이부 라이온즈와 다이에 호크스(소프트뱅크) 소속으로 이치로를 상대했던 구도는 2000년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1999년 이치로를 타석에서 마주한 게 마지막이었다. 이치로는 2000년까지 7년 연속 퍼시픽리그 타격 1위를 하고 메이저리그로 갔다.
둘은 나고야 메이덴고등학교 선후배다. 구도가 이치로보다 10년 위다. 이치로는 1994년 타율 3할8푼4리를 기록하고 사상 첫 200안타(210개)를 돌파했다. 그해 최연소 MVP를 수상하고, 이후 3년 연속 MVP에 선정됐다.
지난 주 이치로가 일본을 뒤흔들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명예의전당에 입성했다. 야수 첫 만장일치를 노렸는데, 딱 1표 차로 아쉽게 아쉬움을 삼켰다. 투표자 394명 중 393명의 지지를 받아 득표율 99.75%. 미일통산 '4367안타'를 기록한 이치로가 얼마나 위대한 타자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 명예의전당 열풍이었다.
구도 전 소프트뱅크 감독은 일본 매체를 통해 "이치로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팔이 나오는 궤도, 공의 궤적을 모두 기억했다. 비슷한 공을 던지면 어김없이 맞았다"고 돌아봤다.
투수와 타자는 그라운드 밖에서부터 치열하게 싸운다. 서로를 꼼꼼하게 분석해 준비한다. 상대 약점을 파고들고 허를 찔러야 이긴다. 상대적이긴 해도 게임을 주도하는 투수가 유리한 면이 있다. 정상급 투수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치로는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타자였다.
구도 전 감독은 '이치로의 무엇이 대단한가'라는 질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몸 쪽으로 슬라이더나 컷패스트볼 같은 평소 안 던지는 공을 던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번은 누를 수 있었지만 다음엔 통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 같은 공을 던졌다가 2루타를 맞았다"고 했다.
이치로는 상대 투수가 자신에게 던진 구종, 구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볼 배합에 신경을 서도 결국 맞았다고 했다. 빠른 발까지 있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완벽한 타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구도 전 감독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답이 안 나왔다. 속수무책이었다"며 웃었다. 상대가 이치로였기에 어쩔수 없다는 걸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1982년 세이부에 입단한 구도는 다이에, 요미우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거쳐 2010년 세이부에서 은퇴했다. 무려 29시즌 동안 마운드에 올랐다. 총 635경기에 등판해 224승142패-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그는 선수로 14차례 재팬시리즈를 경험했다. 또 소프트뱅크 감독으로 2015~2021년, 7시즌 동안 5차례 재팬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