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블렌츠·코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독일 서부를 흐르는 라인강의 지류 모젤강 주변에는 아름다운 소도시들이 많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릉지대에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즐비하다.
모젤강 주변에 도시가 생겨난 것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는 게르만족의 침입에 대비해 모젤강 인근에 요새들을 세웠고 이것이 도시로 이어졌다.
◇ 상고대가 빚은 환상적인 풍경 그윽한 모젤강
항공사 마일리지가 소멸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급히 항공편을 찾아보니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항공편이 남아 있었다.
겨울철 독일은 여행지로 인기가 있는 곳은 아니다.
더욱이 프랑크푸르트는 관광보다 비즈니스 목적지로 분류되는 편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차를 빌려 라인강 쪽으로 향했다.
라인강의 지류인 모젤강변 풍광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밋밋한 라인강 주변을 달리다 모젤강을 만나면서 여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겨울 모젤강 주변은 한낮이 되어도 안개가 사라지지 않았다.
안개는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상고대를 형성했다.
신비로운 설경이 펼쳐졌지만, 바닥에는 눈이 없어 통행에 어려움이 없었다.
프랑스 보주 지역에서 출발한 모젤강은 독일-룩셈부르크 국경을 거쳐 코블렌츠까지 흘러 라인강과 만난다.
가파른 경사면에 형성된 포도밭을 양옆으로 두고 유유히 흐르며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든다.
모젤강 주변이 알려진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였다.
카이사르의 병사들은 기원전 58년에서 50년 사이에 트레베리강(모젤강의 옛 이름)을 처음 정복했다.
당시 강 주변은 트리베리족의 영토로, 게르만족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길목에 있었다.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방을 속주로 삼고 있었지만, 동쪽의 게르만족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면…코블렌츠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처음 모젤강을 만난 곳은 강 하류에 있는 도시 코블렌츠다.
로마 시대 형성된 코블렌츠는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두 강이 겹치는 곳이 예리한 각도를 만들어 '도이치 에크(Eck)'(독일의 모서리)라 불리는데, 이 지점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코블렌츠라는 도시명은 함께 흐른다는 뜻의 고대 이탈리아어 '콘플루엔테스'(Confluentes)에서 유래했다.
코블렌츠에는 이 이름을 이어받은 '포럼 콘플루엔테스'라는 문화 예술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코블렌츠 시내를 걷다 보면 중세 유럽 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소로와 작은 정원들은 무척이나 포근한 느낌을 준다.
도이치 에크 맞은편 언덕 위에는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요새가 자리 잡고 있다.
118m 높이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요새다.
잇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다행히 잘 보존됐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모젤강과 라인강의 물줄기가 한데 어우러져 흘러가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강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요새는 고전영화 '독수리 요새'를 연상시킨다.
요새 맞은편 도이치 에크 쪽에서는 독일 최대 수용력을 자랑하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1시간에 7천600명을 나를 수 있다고 한다. 요새는 두 차례 방문했다.
오전 일찍 해뜨기 전 자동차로 한번 방문했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오전 11시께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힌 뒤 케이블카를 탔다.
견고하게 우뚝 선 요새, 짙은 청색에 가까운 라인강, 황톳빛으로 빛나는 모젤강, 그 두 물길이 만나는 모습은 아름답다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 중세로 돌아간 듯…코헴
모젤강 주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을 꼽으라면 단연 코헴이라 말할 수 있다.
가는 길조차 신비로웠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지방도로 접어드니 나무마다 하얀 상고대가 피어있다.
하늘에서 냉기가 내리는 듯했다. 코헴에 도착하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 주변에 자리 잡은 안개가 만들어낸 상고대였다.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가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코헴 언덕 꼭대기에 있는 라이히스부르크 성은 이곳의 랜드마크다.
그러나 온종일 사라지지 않는 짙은 안개 탓에 아쉽게도 11세기에 건설된 웅장한 성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풍경 하나만으로도 코헴은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도시는 2차 세계대전으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고풍스러운 골목길과 교회 건물 등은 잘 보존돼 있었다.
코헴 시내를 걷다 보면 와인의 도시답게 오래된 포도나무가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간 장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겨울이지만 잎도 그대로 달려 있어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여유가 있다면 모젤강 유람선을 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펜 폰 코헴'(Wappen von Cochem)이라는 이름의 이 배는 코헴의 문장(紋章)이라는 뜻을 지녔다.
강 밖에서 보는 풍경과 강 한가운데서 물살을 헤치며 감상하는 풍광은 큰 차이가 있다.
코헨을 즐기는 또 다른 매력 가운데 하나는 하이킹이다.
아름다운 모젤강과 와인 농장을 가로지르는 하이킹 코스는 이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매력이다.
울퉁불퉁한 바위산과 포도밭이 어우러진 풍광이야말로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대형 풍경화다.
유럽을 여행하다가 서양 음식에 지칠 때는 케밥이나 아시아 음식이 좋은 대안이 된다.
모젤강변 다리 바로 옆에서 평점이 좋은 케밥 식당을 찾았다. 가성비 좋은 메뉴가 많았다.
스파게티와 케밥을 주문했는데 다 먹지 못하고 남길 만큼 양이 많았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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