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선을 한참 넘었다. 남의 집 잔치에 초대된 손님이 말 그대로 '깽판'을 쳤다. '잔치집 주인' 격인 에버턴을 완전히 능욕하는 행동을 저질렀다.
에버턴 구단이 한 18세 이하 선수의 건방진 행동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 에버턴 팬들의 분노 게이지가 한꺼번에 폭발한 순간이다. 무려 133년 만에 새 구장을 짓고, 개장 축하의 의미로 친선경기를 개최했는데, 첫 골을 넣은 선수가 지역 라이벌 구단의 업적을 상징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에버턴의 자존심을 완전히 깔아 뭉개는 행동이었다.
영국 매체 데일리스타는 18일(이하 한국시각) '에버턴의 7억5000만파운드(약 1조3640억원) 짜리 새 홈구장 개막 경기에서 위건이 건방진 리버풀 찬양 제스추어를 앞세워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에버턴 흑역사의 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남을 사건이다. 자존심 강한 에버턴 팬들 역시 크게 분노했다. 완전히 선을 넘은 건방진 세리머니가 나왔기 때문이다.
에버턴은 이날 2025~2026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쓰게 될 새 홈구장인 '에버턴 스타디움'을 공개했다. 브램리 무어 독 스타디움이라고도 불리는 이 새 구장은 5만2888석 수용규모를 자랑하는 최신식 경기장이다. 2021년에 처음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완공됐다. 에버턴 구단이 무려 5억5000만파운드를 투자했고, 현재 가치는 7억5000만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지난 1892년 개장해 무려 133년의 역사를 지닌 구디슨파크를 대체할 에버턴의 새 홈구장이라는 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에버턴 구단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역사에서도 의미있는 이벤트다.
에버턴은 다음 시즌 본격적인 개장을 앞서 이날 팬들에게 경기장을 처음으로 개방했다. 1만명의 팬을 초대했고, 개장경기로 18세 이하(U-18) 팀간 친선경기를 마련했다. 위건 애슬래틱 U-18팀을 초청해 에버턴 U-18팀과 경기를 갖게 했다.
에버턴 팬들의 자부심과 기쁨이 최정점에 오른 현장이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잠시 후 커다란 분노로 바뀌었다.
새 구장의 첫 골을 에버턴 소속 선수가 아닌 위건 선수가 넣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개장 첫 골의 주인공인 위건의 미드필더 해리슨 리머가 어처구니 없는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골을 넣은 뒤 에버턴 팬들을 보며 오른손 검지손가락과 왼손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펼쳐 보였다. 리머가 손으로 만든 '숫자 6'이 상징하는 건 에버턴의 연고지역 라이벌인 리버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였다.
이 매체는 '위건의 젊은 선수가 홈 관중에게 손가락 6개를 들어보이는 세리머니로 지역 라이벌인 리버풀을 언급하면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미러 역시 '위건 미드필더 리머가 에버턴 새 구장에서 이른 시간에 골을 넣었다'고 전했다.
에버턴과 리버풀은 같은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지역 라이벌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체스터 시티, 토트넘 홋스퍼-아스널의 관계와 비슷하다. 팬들의 자부심과 상대 팀에 대한 적의도 엄청나다.
위건의 리머는 에버턴의 축제 현장에서 라이벌의 영광을 언급한 것이다. 거의 면전에 대고 모욕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위건의 두 번째 골을 넣은 콜 심스는 코너 플래그를 발로 차는 세리머니까지 했다. 완전히 잔치집에서 난동을 피운 셈이다.
에버턴은 16세의 레이 로버트가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넣으며 간신히 영패를 면했다. 로버트는 새 경기장에서 첫 골을 넣은 에버턴 소속 선수로 역사에 남게됐다. 하지만 위건 선수들이 보여준 모욕적인 행동을 지울 순 없었다. 에버턴 팬들은 리머의 '리버풀 세리머니'로 인해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