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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에는 인생이 담긴다…'알고 보면 반할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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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조명한 조선시대 초상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렘브란트(1606~1669)는 말년 들어 거의 자화상만 그렸다. 천재적 작가였던 그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예와 깨달음의 정수를 자기 얼굴에 담았다. 인생의 심연이 담겨 있었기에 그의 자화상은 고흐를 비롯해 수많은 화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서양에만 그런 화가가 있는 건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렘브란트나 고흐처럼 자화상에 매료된 화가들이 있었다.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가 대표적이다.
공재는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가리켜 일국의 재상이 되고도 남을 높은 지식과 도덕의 크기를 갖추고, 풍모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넓이를 갖고 있다고 했다.
드높은 학문과 인격, 그림 솜씨를 갖추었지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평생 관직에 나가지 못했고, 결국 고향 해남으로 낙향해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낙향 직전인 45세 때 그림 한 점을 남겼는데, 이 그림이 '자화상'이다. 렘브란트가 그랬듯, 자화상에는 윤두서의 모든 심득(心得)이 담겨 있다.

공재의 자화상에는 인생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의 눈길은 무서우면서도, 호랑이 같은 기상이 엿보이다가도 어떨 때 보면 깊은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귀기(鬼氣) 어린 이 그림은 조선 초상화가 닿은 한 경지를 보여준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우리나라 초상화 중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며 회화로서는 드물게 국보(제240호)로 지정돼 있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이성훈은 신간 '알고 보면 반할 초상'(태학사)에서 "윤두서는 자신이 평생 쌓은 학문적·예술적 성취와 자신감의 근원을 자화상에 담아내고자 했으며, 자기 머리(얼굴)에서 기가 발산되는 듯한 모습으로 수염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고 해석한다.
'알고 보면 반할 초상'은 저자가 조선시대 초상화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당대 정치, 사회, 문화상을 추적해 해설한 책이다.
저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御眞)을 비롯해 충성심의 증표로 왕이 하사한 '신하 초상', 각 당파나 학파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진 '스승 초상' 등 조선시대 초상화 120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45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