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포기 없었던 정관장의 기적.
우승 가능성을 살렸다. 그리고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역대급 명승부를 함께 펼친 멋진 상대팀으로 남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날이었다. 정관장이 감독의 반전 드라마를 써내렸다.
정관장은 4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대2(21-25, 34-36, 25-22, 25-19, 15-11) 승리로 챔피언결정전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정관장은 5전3선승제 시리즈, 원정 인천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내주고 홈 대전으로 내려왔다. 준우승에 그칠 위기에서 이날 승리로 기사회생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강호 흥국생명이 3번째 도전 만에 우승컵을 다시 들어올릴지, 그리고 시즌 막판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배구 황제' 김연경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끝을 맺을 수 있을지의 관심이 쏟아진 경기였다. 하지만 정관장도 들러리로만 남을 수 없었다. 정관장 고희진 감독은 경기 전 "김연경 선수가 1경기 더 했으면 좋겠다. 전 국민이 바라지 않을까"라며 3차전 승리에 대한 의지를 재치있게 드러냈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체력을 세이브하고, 철저하게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했다. 반면 정관장은 부키리치, 박은진이 정규리그 막판 부상을 당한 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지만 플레이오프플 치르며 염혜선과 노란의 부상이 발생하는 등 선수들이 지친 상태에서 챔피언결정전을 맞이했다. 플레이오프도 3차전까지 치른 여파가 컸다.
1차전은 흥국생명의 셧아웃 승. 2차전이 중요했다. 정관장이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나가며 균형을 맞추는 듯 했지만, 김연경의 엄청난 활약에 경기를 뒤집히고 말았다. 여기서 분위기가 흥국생명쪽으로 흐르게 됐다. 김연경은 2차전 2세트까지 4득점에 그쳤지만, 결국 22득점 경기를 해내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1차전에서도 팀 최다인 16점을 몰아치며 완승을 책임졌다.
예상대로 3차전 1세트는 승기를 잡은 흥국생명의 흐름이었다. 시작부터 5-2로 앞서며 기선을 제압했다. 정관장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갔지만 16-14 흥국생명 리드 상황이 승부처였다. 부키리치의 강한 스파이크를 리베로 신연경이 엄청난 디그로 걷어냈고, 정윤주가 마무리 하며 3점차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정관장은 여기서 급속도로 무너졌다.
하이라이트는 2세트. 마치 2차전의 압축판을 보는 것 같았다. 엄청난 명승부였다. 2세트 초반부터 흥국생명이 5-1로 점수차를 벌리며 쉽게 이기는 듯 했다. 10-5까지 앞섰다. 하지만 홈팬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정관장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며 10-10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메가의 블로킹으로 21-20 기적같은 역전을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양팀의 피말리는 듀스 승부. 사실상 정관장 메가, 그리고 흥국생명 김연경의 1대1 쇼다운 매치였다. 결국 중요할 때 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역전에 역전을 주고 받은 두 팀. 정관장은 부키리치의 득점으로 33-32로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수비에 성공하며 세트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잘 때리던 메가의 공격이 흥국생명 피치의 손에 걸려 다시 동점이 됐다. 그리고 이 순간 김연경이 나타났다. 35번째, 36번째 득점을 연달아 성공시킨 후 환호했다.
흥국생명이 쉽게 가져갈 것 같던 3세트. 하지만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정관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을 시도했다. 세트 초반 8-3까지 앞서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너무나 열심히 때려준 주포 메가의 힘이 떨어졌다. 반면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아끼며 야금야금 추격에 성공했다. 결국 정윤주의 득점으로 16-16 동점이 됐고, 투트쿠의 블로킹으로 17-16 역전에 성공하며 끝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던 정관장도 더 버틸 수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부키리치가 마지막 투혼을 펼치겠다는 듯 공격과 블로킹에서 '미친' 활약을 선보였고 결국 정관장이 힘겹게 한 세트를 만회했다.
4세트. 분위기를 탄 정관장이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점수차가 10-5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김연경의 득점, 부키리치 범실, 이고은의 서브 에이스, 김수지의 블로킹이 한꺼번에 나오며 점수차가 급격히 즐어들었다. 9-10 턱밑 추격. 하지만 11-9 상황서 부키리치가 때린 공이 블로킹 벽에 막힌 후 자신의 몸을 맞고 흥국생명 코트에 떨어지는 순간, 행운의 여신이 정관장쪽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11-15로 밀리던 상황에서 15-15 동점을 만들며 경기가 안갯속으로 빠지는 듯 했지만, 홈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정관장은 기어코 4세트도 가져와버렸다. 흥국생명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진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운명의 5세트. 정관장이 내리 3점을 따며 15점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미 지친 흥국생명은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다. 정관장 선수들은 똘똘 뭉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흐름이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13-10에서 부키리치의 서브 에이스가 성공되는 순간. 사실상 분위기는 끝이었다. 그렇게 정관장 선수들이 승리를 확정한 후, 홈팬들 앞에서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했다. 13년 만에 다시 올라온 챔피언결정전 무대에서 고 감독 말대로 감동적인 경기를 해내고 말았다.
정관장은 메가가 40득점, 부키리치가 31득점을 몰아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김연경은 29득점으로 맞섰지만 4세트부터 급격히 체력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대전=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