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정관장이 없었다면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가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었을까.
'배구 황제' 김연경의 선수 여정이 극적으로 마무리 됐다.
흥국생명은 9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정관장을 상대로 세트스코어 3대2 신승을 거두고, 시리즈 전적 3승2패로 창단 후 5번째 챔피언결정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정규리그 후반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한 배구 황제. 배구로는 이룰 걸 다 이룬 김연경이지만, 국내 무대 복귀 후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그쳐 한을 풀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어야 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 기회였다. 정규리그 1위를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체력 싸움에서도 앞설 수 있었다. 만약 김연경이 우승을 하고, MVP를 수상하며 은퇴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시나리오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팀 정관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현대건설과 3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렀다. 염혜선, 노란 두 주축 선수는 당장 뛰기도 힘들 정도로 무릎, 등 통증을 안고 있었다. 주포 메가도 무릎이 좋지 않았고, 부키리치와 박은진도 발목 부상을 털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은 만신창이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힘이 부친 정관장은 1, 2차전을 모두 내줬다. 특히 2차전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다 역전을 당했다. 이 경기를 본 많은 사람들이 "3차전에서 끝나겠다"고 입을 모았다. 흐름이 딱 그랬다.
하지만 정관장은 불사조였다.
대전 홈에서 열린 3차전. 먼저 두 세트를 내줬다.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정관장 선수들은 '좀비'처럼 죽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진 김연경과 흥국생명 선수들을 공략해 3세트를 가져오더니, 경기를 뒤집어버렸다. 내친 김에 4차전까지 거머쥐었다.
시리즈가 원점이 되자 오히려 정관장이 기세가 등등해졌다. 5차전을 앞두고는 "누가 이길지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판세가 바뀌어버렸다.
5차전도 잘 싸웠다. 첫 두 세트를 아쉽게 내줬지만, 포기하지 않고 파이널 세트까지 흥국생명을 몰아붙였다. 5세트도 이길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김연경의 그림과 같은 디그쇼에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집중력, 2%가 부족했다.
경기가 끝나자 염혜선 등 선수들은 펑펑 울었다. 그만큼 아쉬웠다는 뜻.
하지만 정관장은 패자가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 속, 120%의 힘을 쏟아내 역사에 남을 챔피언결정전을 만들어냈다.
스포츠에서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종종 사용된다.
양팀의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본 사람들이라면 '역대급'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적인 명승부였다.
정관장이 열심히 싸워줬기에 김연경의 마지막 무대도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정관장은 이번 챔피언결정전, 김연경 '라스트 댄스'의 조연이 아닌 공동 주연이었다. 김연경이 경기 후 우승 기쁨 표현보다, 정관장에 대한 예우를 먼저 한 이유가 있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