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뷰티 백만장자’ 이상일 “유산 상속? 자식들 정신 망가져..사회에 환원할 것” [종합]

by

[스포츠조선닷컴 박아람 기자] '뷰티 백만장자' 이상일이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9일 첫 방송된 EBS, E채널 공동 제작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이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대한민국 1세대 남성 헤어 디자이너' 이상일이 출연해 자신의 성공 비결을 들려줬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상경한 시골 소년에서 파리 유학생으로, 또 전설의 헤어 디자이너에서 현재 화가로 살기까지 그가 거쳐온 삶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부(富)'와 '성공'의 의미에 대해 들여다봤다.

이상일은 1980년대 국내 최초로 미장원을 '프리미엄 헤어숍'으로 혁신했고, 미용업계 종사자들을 '헤어 디자이너'로 명명한 인물이다. 故신성일, 장미희, 김완선 등 당대 최고 톱스타들의 헤어 아티스트로 활약했으며, 故앙드레김 패션쇼의 상징인 '양머리 스타일'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상일의 인생은 故앙드레김과 같은 디자이너를 꿈꾸며 시작됐다. 서울로 상경하던 날 어머니가 손에 쥐여준 '삶은 계란' 한 줄은 그의 소울 푸드가 됐다. 이상일은 서장훈에게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인생 수업료로 '4,200원'을 요구했다. 우연히 외국 패션지를 번역해서 본 뒤 '남자 미용사'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이상일은 "그때의 잡지 번역료가 4,200원이었다. 내 인생을 바꾼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이상일은 패션 디자이너에서 헤어 디자이너로 진로를 변경하고 무작정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서장훈은 "외국 나가기도 어려운 시대에 잡지를 보고 유학을 결심했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하기 힘든 것"이라며 이상일의 실행력에 감탄했다.

1981년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한 이상일은 한국에 돌아와 '국내 최초 남성 헤어 디자이너'가 됐다. '헤어뉴스'라는 혁신적인 이름의 헤어숍을 열고, 당시 다른 미용실의 10배에 달하는 커트비 15,000원을 받았다. 샴푸, 미용기기, 가구 등 모든 걸 최상급으로 구성하는 '고급화 전략'으로 부자들의 지갑을 열었다. 또 이상일은 "머리카락을 고객의 얼굴 형태에 가장 잘 어울리도록 조각하듯이 잘랐다. 별 볼일 없으면서 요금을 인상한다는 건 용납 못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의 헤어숍은 '오픈런'이 일상다반사일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백만장자의 왕국 투어를 한 서장훈과 조나단.

서장훈은 "정말 엄청나다. 저 혼자 보기가 정말 아까울 정도다. 그런데 이 왕국을 포함한 이 많은 재산, 결국에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이에 이상일은 "나라에 남지!"라면서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절대 자식들에게는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서장훈과 조나단이 놀라워하며 "그렇게 하면 자식들이 슬퍼하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그건 지네들 사정이지. 나는 달걀 한 줄로 일어났는데. 이곳은 나라에서 관리할 거다"라고 밝혔다.

이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상일은 "그걸 왜 자손들한테 주냐. 물질을? 지금까지 내가 자기들을 다 가르치고 키워냈는데 왜 물질을 또 물려주나. 그렇게 하면 애들 정신이 망가진다. 차라리 사회에 내놓는 게 낫다. 나 죽을 때 장례비만 남기면 된다. 죽는 것도 돈이 들지 않나. 그것까지 자식들에게 빚지게 할 수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상일은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돈을 벌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감정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고객을 가장 아름답게 해드릴까?' 그 생각에만 집중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과 물질은 나의 그림자에서 쫓아온다. 인내심을 가지면 수천만장자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tokki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