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아주 오랜만에 배지환(26·인디애나폴리스)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홈런과 2루타를 포함한 멀티히트.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성적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1경기에서 잘 했을 뿐이다. 진짜 목표인 메이저리그 콜업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활약을 적어도 한 달 가량은 꾸준히 펼쳐야 한다. 짧은 메이저리그 등록기간 중에 워낙 실망스러운 모습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피츠버그 산하 트리플A)로 내려간 배지환이 올해 트리플A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했다.
배지환은 10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루이빌 슬러거필드에서 열린 루이빌 뱃츠(신시내티 레즈 트리플A)와의 원정경기에 1번-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배지환은 전날에도 역시 1번 중견수로 올해 첫 트리플A 경기에 나섰는데, 헛스윙 삼진 2개를 곁들여 4타수 무안타로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두 번째 트리플A 경기에서는 조금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시즌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하는 등 4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안타가 홈런과 2루타였다. 이로써 배지환의 마이너리그 타율도 0.250(8타수 2안타)이 됐다.
배지환은 1회초 첫 타석에서 여전히 성급한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다. 상대 선발은 우완 변화구 투수 랜디 윈.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2, 3구에 연속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싱커(89마일, 89.9마일) 두 개를 노렸는데 정타를 치지 못했다. 결국 4구째 체인지업을 퍼올려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3회 2사 후 두 번째 타석에서 시즌 첫 홈런을 날렸다. 윈의 초구 86.8마일(시속 139.7)짜리 커터가 몸쪽으로 밋밋하게 들어오자 그대로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타구 속도는 103.2마일(시속 166.1㎞), 비거리는 377피트(약 114.9m)로 나왔다. 배지환의 올 시즌 마이너리그 첫 안타이자 첫 홈런이었다.
이어 배지환은 7회에는 볼넷을 골라 걸어나갔다.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타석에서 좀 여유가 생겼다. 상대 투수의 제구가 워낙 나쁘기도 했지만, 5개의 공에 단 한번도 배트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지켜보며 볼넷을 얻어냈다.
계속해서 배지환은 5-1로 앞선 9회초 2사 후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를 날렸다. 루이빌 6번째 투수 잭 맥스웰은 99~100마일의 강력한 포심을 던지는 우완투수다. 배지환은 올해 메이저리그 4타석과 전날 마이너리그 4타석에서 모두 90마일 후반의 강속구 대응에 문제를 노출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맥스웰은 6개의 공을 모두 99마일(159.3㎞) 이상의 포심 패스트볼로 던졌다. 배지환의 약점을 눈치챈 듯 힘으로 꺾겠다는 모습이었다. 초구 99.1마일 포심을 스트라이크존 복판에 던졌지만, 배지환의 스윙에 걸렸다. 파울 이후 2, 3구 포심은 바깥쪽 높은 곳으로 떴다. 4구째 포심이 존에 걸쳐 들어왔지만, 배지환이 파울로 걷어냈다.
5구째는 낮게 깔린 포심. 풀카운트에서 6구째 승부구였다. 이날 가장 빠른 100.1마일(161.1㎞)의 포심이 바깥쪽 코스로 들어왔다. 배지환은 이 공을 경쾌하게 밀어쳐 좌전 2루타로 만들어냈다. 이후 배지환은 리오버 페게로의 좌전 적시 2루타 때 홈을 밟아 득점까지 올렸다. 리드오프 배지환의 멀티히트 장타쇼를 앞세운 인디애나폴리스는 결국 7대3으로 승리했다.
이날 배지환의 멀티히트 활약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메이저리그 개막 엔트리 합류의 기쁨도 잠시, 2경기-4타석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충격을 벗어났다는 의미가 있다. 게다가 마지막 타석 2루타를 통해 99~100마일의 빠른 공에 대한 적응도 어느 정도 마쳤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한 경기로 배지환에 대한 평가가 확 달라진 건 아니다. 겨우 한 경기였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강등될 당시 배지환이 피츠버그 코칭스태프에게 남긴 실망감은 겨우 한 경기 반짝 활약으로 회복될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활약을 꾸준히 한 달 정도는 펼쳐 보여야 콜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배지환은 지난해 트리플A에서 66경기에 나와 타율 0.341 7홈런 41타점 49득점 84안타, 출루율 0.433 OPS 0.937 등을 기록했다. 리그 최고수준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이후에는 29경기에서 타율 0.189(74타수 14안타)에 그쳤다.
'트리플A 수준은 넘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안 통하는 레벨'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스탯이다. 올해는 이걸 깨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트리플A에서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찍은 뒤 콜업 이후에도 타격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