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국가대표선수촌(충북)=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김)택수형, 탁구 한판 해요.' "택수형, 파이팅!"
김택수 신임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이 지난 7일 열린 취임식에서 선수, 지도자들에게 선물 받았다는 태극기엔 '택수형'으로 시작하는 메시지가 빼곡했다. 선후배 선수, 지도자들로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취임식장에선 '아시아의 호랑이' 김 촌장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남자단식 결승, 중국 류궈량을 돌려세운 '전설의 32구 랠리' 영상이 리플레이됐다. "우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1987년 태극마크를 단 이후 선수, 지도자로 무려 24년간 태릉, 진천 한솥밥을 먹었던 대선배의 금의환향을 진천인들이 한마음으로 반겼다.
9일 진천선수촌 집무실에서 마주한 김 촌장은 "취임식에서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자리가 없어 돌아간 분도 있었다"고 했다. "잘 떨지 않는데 가슴이 뛰더라. 내 안에 선수촌 DNA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지도자들을 위해 모든 걸 다해야 한다. 무거운 책임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취임사에서 그는 신뢰와 존중,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한계를 뛰어넘는 반복훈련 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재차 공언했다. 부임과 함께 시도한 첫 변화는 선수촌 새벽훈련 자율화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율화 이후에도 새벽훈련 참가 인원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 김 촌장은 "인원수에 변화가 없다. 유도, 레슬링, 복싱, 펜싱, 하키 등 대부분 다 나온다"고 했다. "우리 선수들은 자율에 맡겨놔도 이렇게 다 알아서 한다"며 웃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와 존중이다. 취임사에서도 선수촌을 '가족' '공동체'라고 표현했듯이 선수촌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서로 믿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촌장은 넓은 스펙트럼과 유연한 사고, 뜨거운 열정을 지닌 체육인이다. 고교시절 스웨덴 유학, 전성기 땐 프랑스 등 유럽에서 프로선수로 뛰면서 넓은 세상을 배웠다. 선수 은퇴 이후, 단 한번도 스포츠 현장을 떠난 적 없다는 것 역시 강점이다. 2004년 선수 은퇴 직후부터 2004~2006년 남자탁구 코치,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감독, 2017~2021년 도쿄올림픽 직전까지 남자탁구 감독을 역임하고 최근까지 미래에셋증권 총감독으로 일하며 정영식, 장우진, 오준성 등 에이스를 키워낸 김 촌장은 2030세대와 소통하는 법을 안다. "난 선수들을 믿는다. 젊은 세대들은 통제대상이 아니다. 인격을 존중하고, 다름을 존중하면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는 양보 못한다. '한계를 뛰어넘는 끝없는 반복훈련' 국가대표라면 이것만큼은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이것 말고 나머지는 편안하게 해주면 된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훈련 문화, 열린 선수촌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끈끈한 '원팀 코리아'를 위한 종목간 소통, 열린 선수촌 문화를 위한 이벤트도 제안했다. "선수촌 공동체로서 종목간 교류도 늘려가면 좋겠다. 웨이트장에서 레슬링, 유도, 하키 등 파이팅 넘치는 종목끼리 한달에 한두 번 크로스핏 배틀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음주 허용은 아직 시기상조지만 1년에 한두 번 '치맥데이''가족초청데이'도 추진하려 한다. 가족, 연인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자부심도 절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
펜싱 오상욱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비올림픽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쉬어가는 문화에 대해서도 김 촌장은 "괜찮다. 문제 없다"고 했다. "경기력이 이미 올라온 선수들이고, 스스로 관리하는 선수들이다. 베테랑 선수들인 만큼 큰 대회에 컨디션을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어린 유망주들은 강하게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한편 월드클래스 선수들에 대한 맞춤형 케어도 당연히 필요하다. 체력도 나이도 다른데 똑같은 훈련을 강요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태릉인 선배로서 후배 태극전사들에게 "신뢰와 존중의 문화"를 강조했다. "태릉 시절엔 서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경기장엔 늘 땀 냄새가 넘쳐났다. 그 열정과 끈끈한 문화는 이어가고 싶다. 촌장인 나부터 먼저 다가가고 나부터 먼저 인사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 2월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임기 후 맞을 첫 종합대회다. 김 촌장은 "국가대표 선발도 끝나지 않은 만큼 종목 지도자 의견을 들어보고 목표를 세울 것"이라면서 "베이징동계올림픽서 금메달 2개를 땄다.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위해 종목, 협회와 함께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내년 일본 아이치·나고야하계아시안게임도 쉽지 않다. 일본은 통상 아시안게임에 2군을 보냈지만 홈에선 에이스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나는 선수 때도, 감독 때도 진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했다. 유승민 회장이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금메달을 딸 때도 2% 확률도 안됐다. '한계를 뛰어넘는 끝없는 반복훈련'과 함께 긍정의 파이팅, 지지 않는 근성이면 뭐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인기·비인지종목들을 위한 다목적 체육관, 꿈나무 선수들과의 합동 훈련 등 선수촌 활용도 다각도로 고심중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진천선수촌을 잘 활용해야 한다. 복싱, 레슬링도 한때는 인기종목이었다. 메달 많이 따는 종목도 중요하지만 종목의 균형 있는 성장과 발전도 중요하다. 양궁, 펜싱, 사격, 태권도 등에서 금메달 13개가 나왔는데 나머지 종목은 그럼 어떡할 거냐"고 반문했다. "꿈나무육성부도 신설했다. 어릴 때 선수촌 견학도 시켜주고, 영재 선수들은 꿈나무 훈련을 통해 국대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는 기회도 주려 한다. 인기종목, 스타선수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앞으로 4년 후, 10년 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나는 욕심이 많다. 어떤 종목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비인기종목 선수들도 더 많이 써달라"고 당부했다.
인터뷰 내내 선후배 체육인들을 섬기는 리더십, 한발 먼저 다가서는 낮은 리더십, 발로 뛰는 소통, 신뢰와 존중을 쉼없이 강조한 '택수형'에게 2년 임기를 마칠 때 체육인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은지 물었다. 망설임 없는 한마디가 돌아왔다. "'일 제대로 했다. 심부름 정말 열심히 잘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충북)=전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