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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삶에도 아름다움이 있다…이정연 장편 're,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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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문학상 수상 작가…"각자 자기만의 '셸리'처럼 살아가기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나를 도운 타인은 줄곧 없었다. 나를 보호할 울타리가 없었고, 부모가 사라진 뒤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떤 길도 처음 길을 낸 사람이 있으며 각자 갈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2013과 2006, 신세계로' 에서)
지홍은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유일한 가족인 보험설계사 어머니는 술과 남자에게만 관심 있을 뿐 딸인 지홍을 투명 인간 취급한다.
그런 어머니가 치정의 상대였던 한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지홍은 안타까운 마음보다 '드디어 자유를 맞는 것인가 하는 희망'을 느낀다.
소설가 이정연(47)의 신작 장편 're, 셸리'는 밑바닥에 놓인 것만 같은 자기 삶을 높은 곳에 올려놓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홍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지홍이 어머니를 잃고 대학생이 되는 2006년, 전자제품 대리점에 취업해 일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2013년, 가전제품 회사에서 만년 대리로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2024년을 오가며 펼쳐진다.
지홍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부도덕한 일을 해서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어 하지만, 번번이 정작 이용당하는 것은 지홍 자신이란 것을 깨닫는다.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일하던 지홍은 대학 동기인 승훈과 그의 고향 사람들이 벌인 살인 사건에 동참한 뒤 이를 약점으로 잡아 가전제품 회사의 본사 특채로 입사하지만, 이전의 일자리만도 못한 외딴 지방의 공장에 발령받는다.
이후 지홍은 본사 워크숍에서 만난 재욱의 추천으로 본사로 발령받고 재욱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데, 재욱의 지시로 온갖 부당한 일을 해주고도 대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지홍은 대학생 시절 연극에서 자신이 연기한 해맑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인물 '샐리'로, 지홍이 종종 '셸리'라고 잘못 발음한 인물이었던 때로 되돌아가려 한다.
이처럼 're, 셸리'는 추락을 거듭하기만 하는 것 같은 지홍의 삶에도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정연은 '작가의 말'에서 "비루한 처지였던 지홍은 셸리가 되어 전에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각자 '셸리'가 되어 살아가라고 권한다.
"나는 감히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희망한다. 날개를 활짝 펴고 자신만의 셸리를 끄집어 그처럼 살아가라고."('작가의 말' 에서)
201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정연은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 등을 펴냈다. 장편 '속도의 안내자'로 2022년 제10회 수림문학상을 받았다.
산지니. 256쪽.
jae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