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린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로리 맥길로이(북아일랜드)는 골프로는 '다 가진 사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18세의 나이에 세계 아마추어 랭킹 1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고, 프로 전향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2010년 21세의 나이에 PGA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렸다.
골프를 치는 누구라도 갖고 싶은 아름다운 폼, 엄청난 비거리, 수려한 외모까지. 골프 스타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오랜 기간 골프의 황제로 인정받아온 타이거 우즈의 대를 이을 스타를 찾던 골프계는 그 후계자로 맥길로이를 선택했다. 우즈의 오랜 파트너였던 스포츠 용품사이자 후원사인 나이키가, 차세대 간판 스타로 영입한 선수가 바로 맥길로이였다.
세계랭킹 1위도 오래했다. 메이저 대회에서도 여러차례 우승했다. 이번 시즌도 시작부터 뜨거웠다. AT&T 페블비치 프로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다. PGA 통산 28번째 우승.
하지만 맥길로이는 늘 목이 말랐다. 아무리 우승을 해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왜냐. 프로 골프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스터스, US오픈, 디 오픈 챔피언십, PGA챔피언십까지 4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는 선수에게 '그랜드 슬래머' 칭호가 따른다. 진 사라젠, 벤 호건(이상 미국) 게리 플레이어(남아공)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까지 총 5명의 골프 전설들만 이룬 엄청난 업적이다. 그만큼 이루기 힘든, 최고의 영광이다.
맥길로이의 '그랜드 슬램' 달성은 매우 쉬울 줄 알았다. 데뷔 5년 만에 US오픈을 제패했다. 이듬해인 2012년 PGA 챔피언십, 2014년 디 오픈 트로피까지 품었다. 2014년은 PGA 챔피언십 두 번째 우승까지 더했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마스터스 우승의 상징인 '그린 재킷'을 곧 입을 거라 예상하는 전문가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랜드 슬램'의 압박은, 천하의 맥길로이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매 시즌 '이 대회만 우승하면'이라는 얘기가 맥길로이의 어깨를 짓눌렀다. 여기에 마스터스가 쉬운 무대인가. 골프 선수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다. 그만큼 코스 세팅도 어렵고, 대회장 긴장감도 남다르다. 한 두 번 우승 기회가 물건너가자, 맥길로이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일찌감치 큰 대회에서 2승을 하니 기대감이 하늘을 더욱 찔렀다. 여기에 컨디션도 좋았다. 3라운드까지 2타 차 앞선 단독 선두였다.
하지만 3라운드까지 2위에 4타나 앞서다 최종 라운드 망가진 2011년 대회가 생각나서였을까. 맥길로이는 1번홀 더블보기를 치며 위기에 빠졌다.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게 한 홀 만에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하지만 맥길로이는 무너지지 않았다. 3, 4번홀 연속 버디로 살아났다. 디섐보는 따돌렸다. 하지만 저스틴 로즈(잉글랜드)가 따라왔다. 라운드 중반 단독 선두 자리를 로즈에게 내주기도 했다. 로즈가 11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끝냈다. 맥길로이는 17번홀 버디로 12언더파가 됐다. 18번홀만 파로 막으면 꿈에 그리던 우승이었다. 하지만 긴장을 이기지 못했는지, 세컨드샷이 벙커에 빠진 여파로 통한의 보기를 적어내고 말았다. 마지막 짧은 퍼트도, 평소같았으면 90% 이상 넣었을 난이도의 퍼트였다.
운명의 연장전. 신은 맥길로이를 버리지 않았다. 연장 첫 홀 맥길로이는 홀 1m에 붙이는 환상적인 세컨드샷으로 로즈를 압박했다. 스핀이 걸린 공이 경사를 타고 홀컵쪽으로 내려오는데, 이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들의 환호성이 점점 커졌다. 버디와 파. 그렇게 희비가 엇갈렸다. 맥길로이는 우승이 확정된 후 그린에 무릎을 꿇고 포효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얼마나 이 우승이 간절했는지, 이 우승에 대한 기대와 부담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맥길로이가 14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9회 마스터스(총상금 2100만달러)에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29승, 11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 우승 상금 420만달러(약 60억원)도 중요했지만 역대 6번째 '그랜드 슬램' 달성 타이틀 외에 의미가 있는 건 없었다. 17번째 도전 만에 자신의 골프 인생 '한'을 풀었다.
우즈가 2000년 '그랜드 슬램'을 마지막으로 달성한 뒤, 25년 동안 6번째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우즈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스타가 마침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우즈도 맥길로이의 우승이 확정된 후 "'클럽'에 합류한 걸 환영한다"면서 "오거스타에서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축하했다.
맥길로이는 현장 인터뷰를 통해 "꿈이 이뤄져다. 골프 인생 최고의 날이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것, 실망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것에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감격의 소감을 밝혔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