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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극적인 4강 진출로 팀 동료들이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강인(24)은 그 기쁨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철저히 소외당했다. 치열한 접전 속에 이강인의 자리는 없었다. '출전시간 0분', 이강인은 이날도 파리생제르맹(PSG)의 잉여자원이었다.
파리생제르맹(PSG)이 극적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준결승에 오르며 우승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힘겨운 승리였다.
PSG는 16일(이하 한국시각) 잉글랜드 버밍엄 빌라 파크에서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2024~2025시즌 UCL 8강 2차전을 치렀다. 그러나 결과는 2대3 패배였다. 홈팀 애스턴빌라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한 듯 총력전을 퍼부은 끝에 PSG를 쓰러트렸다.
하지만 애스턴빌라는 '전투'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전쟁'의 승자는 결국 PSG였다. PSG는 지난 10일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3대1로 먼저 승리한 바 있다. 이로 인해 1, 2차전 합산 스코어에서 결국 PSG가 5-4로 앞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PSG는 지난 시즌에도 UCL 준결승에 오른 바 있다. 구단 사상 첫 UCL 우승을 향해 한발 더 다가선 셈이다.
하지만 이날 PSG의 UCL 4강행 뒤에는 이강인의 한숨이 담겨 있다. 이강인은 지난 1차전과 마찬가지로 이날 2차전에서도 단 1분 조차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벤치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엔리케 감독의 선발 포메이션은 4-3-3이었다. 공격 삼각편대로 브래들리 바르콜라-우스만 뎀벨레-흐비차 크바라첼리아를 냈다. 그 뒤로 파비안 루이스-비티냐-주앙 네베스 미드필더진이 배치됐다. 포백 수비는 누누 멘데스-윌리안 파초-마르퀴뇨스-아슈라프 하키미가 나왔고, 골문은 잔루이지 돈나룸마 키퍼가 맡았다. 현 시점, PSG의 최정예 스쿼드다. 이강인의 자리는 없다.
정예전력 답게 PSG는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10분에 바르콜라가 왼쪽 측면을 뚫고 올라가 낮은 크로스를 보냈다. 애스턴빌라 마르티네스가 클리어링하려 했으나 실패. 하키미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공을 골문 앞으로 밀어넣었다.
합산스코어 3골차로 뒤지게 된 애스턴빌라는 '사생결단' 작전을 펼쳤다. 라인을 끌어올려 전면공세에 나섰다. 이걸 PSG가 영리하게 역이용했다. 전반 27분에 뎀벨레의 패스를 박스 중앙에서 이어받은 수비수 멘데스가 왼발 강슛으로 2-0을 만들었다. 합산스코어는 5-1이 됐다.
여기서 백기를 들 법도 했지만, 애스턴 빌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전반 33분에 틸레만스의 슛이 수비에 맞고 들어가며 추격골이 터졌다.
후반은 완전히 애스턴 빌라의 페이스였다. 1-2로 뒤진 채 맞이한 후반전. 9분 만에 맥긴의 왼발 중거리 슛이 골문 구석에 꽂혔다. 바로 3분 전 골 위기에서 슈퍼 세이브를 펼쳐 낸 돈나룸마 골키퍼가 이 골은 막아내지 못했다. 2-2 동점.
기세를 탄 애스턴빌라는 다시 4분 뒤 역전에 성공했다. 후반 13분 래시포드가 오른쪽 측면을 무너트리며 드리블. 이어 날카로운 컷백 패스. 달려들던 콘사가 골문으로 밀어넣어 3-2를 만들었다.
남은 시간은 35분 정도. 충분히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애스턴 빌라 홈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후반 15분에 애스턴빌라가 또 골 기회를 잡았다. PSG 수비 마르퀴뇨스가 크로스를 걷어내는 데 실패했다. 틸레만스가 헤더 슛을 날렸다. 거의 골이 될 뻔했는데, 이번에도 돈나룸마 키퍼의 슈퍼세이브가 터져 나왔다. 이번 UCL 2차전의 히어로는 단언코 돈나룸마 키퍼였다.
후반 24분에 또 슈퍼세이브를 했다. PSG에서 애스턴빌라로 임대 된 아센시오가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돈나룸마 키퍼의 벽을 넘지 못했다. 돈나룸마가 아니었으면 애스턴빌라는 최소 2골을 더 넣을 경기였다.
결국 경기는 애스턴 빌라의 3-2 승리로 끝났다. 후반 내내 PSG는 애스턴 빌라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급급했다. 이강인이 도저히 나올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다. 엔리케 감독도 1장의 교체카드만 썼다. 후반 15분에 데지레 두에가 바르콜라와 교체돼 출전했다.
이걸로 확실해진 게 있다. 이강인은 주전이 아니다. 팀의 교체 1옵션도 아니다. 2~3옵션 사이의 애매한 위치 어딘가에 있다. 더불어 UCL 토너먼트 같은 중요한 경기에는 주전과 1번 백업의 부상이 아닌 이상 나올 수 없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