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의 여왕' 26~27일 고별 콘서트…"감사할 뿐, 조용히 남은 삶 보낼 것"
"베트남전 장병 타오르는 눈망울서 눈물 뚝뚝…평양 공연 땐 직항 고집했죠"
"설움과 애씀·시대 변화 담긴 우리 가요, 후배들이 전통 지켜주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우리 전통가요는 가슴에 와닿는 감정으로 느끼는 노래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듣기 따분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을 겪은 분들은 깊이 공감해서 무대 아래에서 함께 우시죠."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84)는 1959년 데뷔 이래 격동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응어리진 우리 민족의 한(恨)을 66년간 노래로 풀어왔다.
서울로 떠나기를 바라지 않지만 끝내 잡지는 못하는 '섬마을 선생님',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설움을 삼키는 '여자의 일생' 등 그의 노래에는 '슬픔'이란 단 두 글자에 담아내기엔 복잡다단한 애수가 서려 있었다.
지난달 '마지막 공연'을 전격 예고해 놀라움을 안긴 그는 9일 앞으로 다가온 고별 공연 '맥(脈)을 이음'을 차분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미자는 1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노래하면서 세밀한 감정의 곡을 많이 불렀다"며 "경쾌한 노래라면 음정을 실수해도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제 노래는 세밀한 음정 하나라도 높거나 낮으면 표시가 많이 난다. 전 그걸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어서 (조그만 실수도) 저 자신이 용서가 안 되더라"고 고별 공연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제 노래가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자연스레 (무대를) 안 하는 거지 굳이 은퇴라고 공표할 이유는 없다"며 "데뷔 65주년이던 작년까지 콘서트를 하고, 그다음부터는 안 한다는 마음으로 조용히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우리 가요의 맥을 후배 가수에게 공연 형식으로 물려줄 기회가 와서 이번 무대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자는 오는 26∼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을 끝으로 콘서트를 열거나 신곡을 취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엘레지의 여왕'의 마지막 무대에 많은 관심이 쏠리면서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미자는 "누군가의 목소리는 영원히 남을 수도,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금방 잊힐 수도 있는 게 연예계 흐름"이라면서도 "66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이번 헌정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팬과 관계자분들의 은혜가 크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는 더 표현할 말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라고 소회를 이야기했다.
그는 공연에서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여자의 일생', '섬마을 선생님' 등 대표곡을 주현미, 조항조 등 후배 가수들과 함께 부른다.
이미자는 가슴 먹먹한 노래로 대표되는 전통가요에 대해 "우리네 한이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것"이라며 "여자들이 가슴 아파도 말을 꺼내지 못하던 설움, 종갓집에서 살던 며느리의 설움, 가난의 설움, 자식을 먹여 살리며 겪은 설움과 애씀이 다 우리 가요에 서려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변화가 다 들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가요는 시대의 흐름을 대변해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며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설움, 해방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6·25 전쟁을 겪고 고향을 잃은 설움, 배고픔을 겪은 설움 등 우리의 100년사가 노랫말에 다 얽혀 있다"고 했다.
이미자는 18세 때 서구풍 스윙 재즈 스타일의 '열아홉 순정'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1964년 '동백 아가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이후 결을 같이 하는 곡들을 불렀고, 대중에게 익숙한 '전통가요의 전설' 이미자가 만들어졌다.
그는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시대와 함께하며 전통가요에 대한 소신을 지켰다. 베트남 전쟁 때는 1965년 파병 장병 위문 공연을 다녀왔고, 남북 화해 무드가 절정이던 2002년에는 방북해 평양 공연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독일을 찾아 조국 근대화에 일생을 바친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로했다.
이미자는 베트남전 파병 장병 위문 공연 당시를 떠올리며 "씩씩하고 혈기 넘치는 장병들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며 "그걸 보고 가슴이 뭉클하고 아팠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또 독일 공연을 돌아보며 "지금은 박물관이 된 탄광 갱도 밑에 들어가 보고 (광부들의 노고를) 실감했다"며 "저와 비슷한 연세가 된 그분들도 제가 노래하니 전부 눈물바다가 됐다"고 기억했다.
이미자는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말 저력이 있다"며 "과거에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 외국에서 비판적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실은 그 덕분에 우리가 빨리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미자는 2002년 'MBC 평양특별공연'에서 '동백 아가씨' 등 대표곡을 불렀고, 북한의 조선국립민족예술단과 함께 엔딩곡 '다시 만납시다'를 노래했다.
그는 당시 북한 측이 자신에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시 묵었던 초대소를 내주고, 단체 버스가 아닌 벤츠 승용차를 제공하는 등 '국민 가수'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줬다고 기억했다.
이미자는 "원래 평양에 가려면 중국에서 다른 비행기를 갈아타게 돼 있었는데, 저는 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며 "그래서 대한항공을 전세 내서 우리나라에서 평양 순안공항으로 직항으로 갔다"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또 "제 노래를 주로 불렀지만 성불사, 몽금포, 선죽교 같은 북쪽 명승지와 관련된 노래도 레퍼토리에 포함시켰다"며 "엔딩곡 '다시 만납시다'를 제 스타일로 부르니 북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렸던 것 같다. 거기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떠올렸다.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노래로 가슴을 울렸던 이미자는 "감사하다는 말밖에 더 드릴 게 없다"며 "이렇게 저를 사랑해 주신 분들에게 실망스럽지 않은 이미자로 남기를 바라고 조심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늘 조심스레 살아왔다고 했다. 가사 한 마디, 음 한 소절을 허투루 내는 법 없는 그의 절창(絶唱)처럼 인터뷰에서도 말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고별 공연 이후 계획에 관해 "따로 없다. 조용히 집에서 지내는 것뿐"이라며 "건강을 챙기며 조용히 지낼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자가 평생 힘을 쏟아 온 전통가요는 최근 몇 년간 송가인과 임영웅 등 차세대 스타들이 쏟아져 나오며 '제2의 붐'을 맞고 있다.
그는 "현대의 (요즘 느낌의) 트로트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시대에 '여자의 일생'을 부른다면 시대 감성과 맞지 않을 것이다. 노래란 서로의 감정이 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트로트도 굉장히 좋지만, 우리의 전통가요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공연에 게스트 가수를 초청한 이유가 그것"이라며 "전통이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우리 노래의 전통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요즘 같은 국제적 시대에 후배 가수들이 K팝 분야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참 기쁩니다. 후배들이 팬을 실망시키지 않는 국제적인 가수로 오래도록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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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