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가통계' 감사보고서 확정…부동산원장 사퇴 종용 정황도
"김상조 전 靑 정책실장, '경실련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
"文 '최저임금 증가 긍정효과 90%' 발언 근거 논란에 靑이 허위해명 지시"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주택가격동향조사 업무를 다른 기관으로 넘기고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
17일 감사원이 공개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7월 4일 당시 국토교통부 과장은 한국부동산원(당시 한국감정원) 실무 책임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국토부가 부동산원에 서울아파트 매매 변동률 내림세를 요구했으나 부동산원이 같은 해 6월 4주 차에 변동률을 보합(0.00%)으로 공표하자 책임자를 질책·압박한 것이다.
당시 6월 서울아파트 한 달 실거래가 지수 상승률이 2.05%에 달했고, 민간 통계도 6월 4주 차에 변동률이 0.06%로 이미 상승세로 전환된 상황이었다.
국토부 실장은 또 2019년 8월 5일 당시 김학규 감정원장에게 "원장님, 사표 내시죠"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원장은 청와대와 국토부의 통계 업무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사퇴를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보고서에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 관계자들이 집값 통계 왜곡·조작에 개입한 듯한 발언이 다수 담겼다.
실제로 2019년 6월 17일 '9·13대책'(2018년) 이후 31주간 하락세였던 변동률이 속보치(월 보고)에서 보합으로 보고되자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보합은 절대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장관의 말을 들은 국토부 과장은 부동산원에 "BH(청와대)에서 예의주시 중이고 연락도 받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습니다"라면서 "이번 한 주만 전주와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변동률을 부탁드리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국토부는 같은 해 4월 시장점검회의에서 부동산원에 "강남 지역은 호가도 반영하지 말고, 신고된 실거래도 경우에 따라 다르니 반영하지 말라"며 "부동산원 통계가 민간 통계보다 절대 먼저 상승으로 전환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감사원은 김 장관이 2015년 국회의원을 지낼 당시 통계 사전 제공이 '마사지'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2019년 11월 18일에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BH·국토부가 통계를 낮추도록 부동산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내용의 경찰청 정보 보고가 접수됐고, 이를 보고받은 김 장관은 "앞으로 민원 등 외부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잘하라"고 지시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어 2020년 10월 국토부는 국회의 표본가격 자료 제출 요구에 표본 아파트명 등을 삭제한 채 제출했다. 왜곡이 드러나지 않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당시 국토부는 "그동안 표본 가격을 눌러왔기 때문에 시장가격과 표본가격의 괴리가 알려지게 된다"고 내부 보고했다.
청와대와 국토부의 가격 변동률 하향 압박이 점차 심해지는 상황에서 부동산원 관계자들은 단체 대화방에서 "얘들아, 국토부에서 낮추란다. 낮추자", "최근에는 대놓고 조작하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아울러 시민단체 출신인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토부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2020년 7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현미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이 11%'라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이에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아파트값 상승률이 52%에 달한다며 비판했다.
이때 김 실장은 국토부에 "적극적으로 감정원(부동산원)의 우수한 통계를 홍보하세요. 경실련 본부장이 날뛸 때 강하게 반박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합니까"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청와대 행정관들이 통계와 관련해 '마사지'라는 용어를 공공연히 사용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았다.
2020년 11월 서울 전셋값 변동률이 높게 보고되자 "진짜 담주(다음주)는 마사지 좀 해야 하는 것 아냐?"라는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같은 해 12월에는 다른 부서로 전보 예정된 국토부 담당자에게 "가기 전에 마사지 좀 하고 가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권 후반부인 2021년 6월에는 국토부 고위직이 직원 여럿이 있는 대화방에서 "차관님 생각은 이 정권의 명운이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달려 있다. 지금도 오르는데 두 배로 올리면 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가 된다"는 메시지를 공유했다.
이 밖에 2018년 5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은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성과이고,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도 보고서에 담겼다.
이 발언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됐고, 청와대와 통계청 사이에 해명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2018년 1분기 분배 지표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나자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노동연구원 소속 연구원에게 따로 분석을 의뢰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수석실은 이 분석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은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노동연구원 연구원의 분석은 개인 분석 결과이고, 최저임금 부분은 분석에도 없었으며, 통계 기초 자료도 통계청이 노동연에 제공한 적이 없었다고 감사원은 판단했다.
이어 감사원은 이런데도 청와대는 통계청장에게 '노동연구원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이 통계청에서 자료를 받아 분석했다'고 설명하도록 허위 해명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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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