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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워치] "갑자기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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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다수의견을 내신 분들은 성장과 물가를 봤을 때는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통화정책이 이미 금리인하 기조에 있고 여러 가지 정책 불확실성, 또 금융안정에 대한 고려, 자본 유출입에 대한 고려, 이런 것들을 함께 고려할 때 당분간은 금리를 동결하고 지켜보자는 의견이셨습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 때문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확 들어온 느낌이라 이렇게 어두워진 상황에서는 조금 스피드를 조정하면서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그동안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꿀 준비할 때" 등 기준금리 결정을 둘러싼 복잡다기한 경제 상황을 알기 쉬운 비유로 설명하며 금융시장과 소통해왔다. 이 총재는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한 뒤 여러 대내외 요인에 발목이 잡힌 현 경제 상황을 또 다른 비유로 설명했다. 이번엔 '터널'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를 비롯해 국내 정치 불확실성 등의 악재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현 경제 상황이 마치 갑자기 어두운 터널 속에 들어서 버린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달려오던 속도를 다소 줄이는 의미에서 이달엔 금리를 동결한 뒤 시야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의 비유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와 유예를 반복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 경제 전망의 기본 전제도 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국 경제를 살리겠다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오히려 주가 급락과 국채금리 상승 등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하고 물가 상승, 소비심리 위축 등을 불러와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을 것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가열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보복 조치는 두 나라에 약 40%에 가까운 수출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국내에서도 작년 말부터 내수 경기를 얼어붙게 한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데다 제주항공 참사부터 동시다발 산불까지 각종 사건 사고가 연달아 터져 내수와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이로 인해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추고 있다. 한은도 다음 달 발표 때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보다 크게 낮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소폭의 마이너스(-)로 하락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이렇게 급격한 경기 하강을 막을 금리인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반대로 금리인하를 막는 요인들도 만만찮게 버티고 있다. 자칫 금리를 서둘러 내리면 1,480원대까지 치솟는 등 널뛰기를 거듭하는 원/달러 환율이 더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토지거래허가제 해제와 재지정 이후 오르는 집값이 가계부채 급증세에 다시 불을 붙일 우려도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다음 주 시작될 미국과의 관세협상 결과나 정부가 추진 중인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진행 상황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을 시사한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변수에 발목이 잡혀 금리 인하가 다음 달로 미뤄진 상황이니 추가적인 경기 하강을 최대한 막으며 돌발 변수를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정부가 마련한 추경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대미 무역 협상도 손실을 최소화해 상호이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야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서면 전조등을 켜 시야를 확보하고 속도도 줄이는 게 안전 운행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렇게 터널을 벗어난 뒤엔 제 속도를 회복하고 밝은 도로를 달려 나가야 하지 않겠나.

hoonkim@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