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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극좌보단 중도가 사고 유연…뇌경직성에 도파민도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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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명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프랑스 혁명 기간 트라시 백작은 옥중에서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사형이 결정된 그는 집중력을 발휘해 그리스 학자들이 쓴 '이데아'(관념)와 '로고스'(논리)라는 말을 결합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이 같은 말에서 드러나듯, 이데올로기는 애초 진리를 지향하고 미신에 반대하는 과학적 프로젝트로 설계됐다. 트라시를 추종한 이데올로기 주의자들은 민주적·세속적·자유주의적 원칙을 찬양하며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독재를 꿈꿨던 나폴레옹은 이데올로기 주의자들의 사상을 '이데올로그'라고 경멸했으며 이 사상을 추종하는 이들을 "몽상가이며 위험하다"고 규정했다.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과 동의어라고 설명하며 "인간의 뇌에 서식하는 유령"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정의됐다. 정치 신경과학 연구의 선구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이데올로기를 "일종의 내러티브이자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어린 영국 소녀들이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거나 영국 경제에 불리한 브렉시트를 국민 다수가 지지한 것도 모두 이데올로기라는 강렬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설득됐기 때문이라고 신간 '이데올로기 브레인'(어크로스)에서 주장한다.
책은 우리의 신념과 행동을 좌우하는 숨겨진 메커니즘인 이데올로기를 촘촘히 분석하면서 뇌과학과 생물학의 측면에서 우리가 왜 경직된 사고방식인 이데올로기에 경도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사용해 정치적 신념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단순한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우리 뇌에 침투해 신경구조와 세포 작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타인과 상호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엄격한 규범을 담고 있다. 또한 이데올로기는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특징은 예측과 일관성을 좋아하고, 타인에게 관심받기를 원하는 우리 뇌의 일반적인 특징에 부합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에 따라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수록 엄격한 규범에 따라야 하기에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이들은 '사고의 경직성'에 갇히게 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교리를 엄격하게 고수하고 되도록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신념을 업데이트하지 않으려 저항하며, 내집단과 외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에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까. 저자는 극우파와 극좌파 등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중도층에 속하는 이들에 견줘 사고가 경직돼 있다고 말한다. 특히 중도 좌파가 가장 유연한 경향을 보인다고 미국인 700명을 분석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주장한다.
"가장 유연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기존 정당에 지나치게 흡수되는 데 저항하면서 약간 좌파 쪽으로 기운 초당파적 성향을 지닌다."
나아가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유전자형에 따라 전전두엽 도파민 수치가 낮고, 동시에 선조체(대뇌피질의 정보를 받아 보상, 집행, 자기 조절 및 운동 처리에 관여하는 뇌 영역) 도파민 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유연성이 떨어지고 경직돼 이데올로기에 잘 빠져든다는 것이다.
다만 저자는 "이데올로기적인 사고를 분석할 때 후성유전학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이 출현하는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후성유전학의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유전자의 발현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로, 삶의 경험에 따라 유전자가 발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아림 옮김. 380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