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소방관들 "바람길 형성돼 확산 가속…들어갔다간 타 죽어"
전문가들 "주민 보호 시설에 투자해야", "진짜 속내는 벌목" 비판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류호준 기자 = 잇따르는 대형산불에 산림청이 산불 진화를 위한 임도(林道) 확충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임도 무용론'을 제기하는 견해가 적지 않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불을 비롯해 화재진화 경험이 풍부한 소방관들은 "고속도로나 활주로가 있어도 끌 수 없고, 임도를 따라 산불을 끄러 들어갔다간 타 죽을 수도 있다"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다고 우려한다.
다년간 산불을 연구한 전문가들 역시 이번 영남지역 산불과 이전 산불 사례에서 임도 주변이 오히려 더 새카맣게 탄 모습을 제시하며 임도가 바람길이 되어서 불이 더 빨라지는 현상이 일어나 대형산불 위험만 커질 뿐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 "불똥 날아다니는데 임도가 무슨 소용" 소방관들 '절레절레'
이강우 강원 원주소방서장은 19일 "임도를 활용해서 대형산불을 초기에 막겠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라며 "고속도로가 아니라 활주로가 있어도 못 끈다"고 확언했다.
이 서장은 "봄철 대형산불은 강풍 탓에 발화지점으로 가면 이미 몇㎞씩 번져 있다"며 "불의 확산 속도가 사람의 이동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불을 따라잡으면서 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산에 임도를 내니 바람길이 형성되고,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키 작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나무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주니 산소 공급이 더 수월해져 오히려 산불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는 조건을 형성한다"고 우려했다.
이 서장은 "회차가 어려운 좁은 임도에 진화차가 들어갔다가 산불에 갇힐 수도 있다"며 "지휘관 입장에서는 도저히 임도로 들여보낼 수가 없고, 산불 진화 측면에서도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했다.
산림화재 전문 강사로 활동 중인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도 "임도 무용론은 겨울철 산불과 봄철 대형산불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겨울철 산불은 공기가 무겁고 불똥이 수백m까지 날아가는 비화 현상을 발생시키지 않아 임도를 이용할 경우 진화에 보탬이 될 수 있지만, 봄철 산불은 강풍을 타고 빠르게 확산한다는 점에서 임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즉 불티가 비화하지 않는 겨울철 산불에서는 '공격적'인 진화가 가능해 임도가 도움이 되지만, 인명 대피와 건축물 방어 등 '수비적'인 진화 전략을 써야 하는 봄철 산불에서는 임도가 무용지물이라는 견해다.
이 과장은 "경남 산청 산불 진화 현장에서 안타깝게도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처럼 산에 올라가서 진압하다가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며 "2023년 4월 강릉 난곡동 산불에서도 진화대원이 해발 50m도 안 되는 임도에 들어가려다 때마침 급격한 산불이 진입로를 막아 못 들어간 천운이 있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봄철 대형산불은 119가 최초 출동하면 이미 산 능선을 넘어 급격히 확대되고 있어 초기진화가 불가능한 상태"라며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봄철 대형산불에 초점을 맞춰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그렇다면 임도 개설보다 제대로 된 진화기술 개발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문가들 "임도=바람길,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내용"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 역시 "산림청이 자꾸 '임도를 깔자'고 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깔아야 산불을 막는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황 소장은 "낙엽이 타는 가을산불이나 산림이 울창한 여름 산불에서는 임도가 방화선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봄철 대형산불은 완전히 다르다"며 "임도가 바람길이 되어서 불이 더 빨리 번질뿐"이라고 지적했다.
임도가 마치 구들장처럼 '불길 가속 장치' 역할만 한다는 지적이다. 산속에서 나무가 빽빽한 곳은 바람에 저항이 있지만, 임도처럼 휑한 길을 만나면 바람이 갑자기 빨라진다는 설명이다.
진화차 진입이 쉬워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2차로 포장도로로 깔면 모르겠지만, 좁은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들어갔다간 회차도 못 하고 갇혀서 타죽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임도 확충할 예산이면 그냥 마을 방어벽을 짓고, 대피 인프라를 갖추는 게 훨씬 낫다"며 "불을 끄겠다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겠다'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는 "5년째 산불 현장을 직접 다니는데, 임도 덕분에 산불을 끈 현장은 한 번도 못 봤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 상임대표는 "불이 머리 위에서 번지는데 임도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며 "산림청이 2022년 울진 산불에서 금강송 보호 성공 사례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혼효림 구조와 비 덕분에 진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임도를 깔자는 산림청의 진짜 속내는 벌목"이라며 "다른 이유로 임도 확충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려우니 예산을 따기 쉬운 논리를 대며 임도 타령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도 "임도 조성, 숲 가꾸기, 사방댐 설치는 일종의 세트 사업"이라며 "이들 세 가지 사업이 산림청 연간 예산의 약 50%를 차지해 이를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홍 교수는 "임도가 바람길 역할을 한다는 건 의견이 아닌 사실이며,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내용"이라며 "임도 주변에서는 벌목과 숲 가꾸기가 빈번히 이뤄져 건조화를 유발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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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