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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얕보지 마세요"…제주마, 임진왜란·한국전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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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들여온 하이테크 목축기술 제주마의 시초
지구력 뛰어나 장거리 최강자…천연기념물 지정 39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라는 옛말처럼 '말'은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다.
천연기념물 제주마를 소재로 한 축제 2025 제주마 입목 문화축제가 19일 개막했다.
19∼20일 이틀간 제주시 봉개동 한라산 중턱 방목지에서 제주마의 힘찬 질주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축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제주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 말의 산지 '제주' 그 유래는?
언제부터 제주에서 말을 키우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제주의 고대국가 탐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주의 시조인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나 나라를 세웠다는 '탐라건국신화'에 단서가 남아있다.
세 신인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혼인하게 되는데, 세 공주는 당시 제주에 없던 메밀을 비롯한 오곡의 씨앗과 망아지·송아지 등 가축을 들여온다.
역사를 반영한다는 '신화'(神話)의 속성상 이는 수렵의 시대가 저물고 농경과 목축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문종 27년(1073년)에 탐라가 고려 조정에 말을 진상했다는 첫 기록이 있어 서기 1000년께 말이 본격 사육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주도가 말의 산지로 유명하게 된 것은 몽골(원나라)이 고려 원종 14년(1273년) 삼별초(三別抄) 군을 제주에서 완전히 진압한 뒤 군마 생산·공급 기지로 제주(탐라)를 주목하면서부터다.
몽골은 고려 충렬왕 2년(1276년) 제주 성산읍 수산리 지역에 몽골식 목마장을 설치하고 몽골마 160필과 말을 관리할 전문 인력인 목호(牧胡)를 보내 말을 기르게 했다.
제주는 공민왕 23년(1374년)까지 약 100년간 원나라의 직할 목장으로 운영되면서 말을 공급했다.
세계를 호령하던 원나라가 아시아의 동쪽 끝 작은 섬 제주에 굳이 목마장을 설치하면서까지 말을 공급하도록 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따뜻한 기후와 드넓은 초지가 있는 제주의 자연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강현 전 제주대학교 석좌교수는 저서 '제주기행'에서 "몽골제국의 세계 경영 차원에서 본다면 탐라의 훌륭한 초지가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지사다. 맹수 없는 초원인 데다가 격리된 섬이라 가축이 도망치지 못하니 이만한 목장터가 아시아에 또 있겠느냐"고 설명한다.
이어 "원은 고려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목호를 파견해 자체적으로 종마를 선택했다. 심지어 고려인의 목장 접근을 금했다. 몽골의 목축 기술 노하우는 당대의 '비밀스러운 하이테크놀로지(첨단 기술)'였기 때문이다. 원의 목호는 풍부한 양마 기술로 순종 몽골종 말을 길러내어 군용 혹은 교통용으로 제공했다"고 말한다.

◇ "제주 목장 말이 날로 키가 짧고 작아지니…"
몽골에서 들여온 말이 그대로 제주마로 이어진 것일까.
세종 3년인 1421년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주(濟州) 목장(牧場)의 말이 날로 키가 짧고 작아지니 그 이유를 따져 본다면, 그 주(州)의 사람과 장사하는 무리가 왕래할 즈음에 문득 몸이 작은 말을 목장에 놓아두므로 이로 인해 번식하는 말이 모두 키가 짧고 작아지니 장사치들이 지나다닐 때 그곳에 있는 수령들은 엄중히 사찰하게 하여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수령까지 아울러 죄를 주도록 하소서….'
이 같은 상소문이 조정에 오르게 된 배경은 이렇다.
100년 가까이 제주에 정착해 말을 키우던 목호들이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반발해 1374년 반란을 일으켰다.
일명 '목호의 난'이다.
고려는 최영 장군을 보내 반란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 목호들이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문제는 원 나라의 목축 기술이 일반 제주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졌을 리 만무했다.
그동안 말 전문가인 목호들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던 몽골의 말이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제주를 오가던 장사치들의 말들과 섞이게 된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토종마는 부여·고구려·동예 때부터 즐겨 타고 다녔던 과하마(果下馬)였다.

과하마는 말 그대로 키가 3척(90.9㎝) 가량으로 몸집이 작아 과일나무 아래를 능히 지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말이다.
이 토종말을 토마(土馬) 또는 향마(鄕馬)라고도 했고, 원나라에서 들어온 말을 호마(胡馬)라 불렀는데 이들 말들이 교잡하면서 점차 체구가 왜소한 말들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목호의 난과 고려에서 조선으로 전환하는 격변의 과정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불과 50년도 안 돼 벌어진 사건이었다.
군사적으로나 교역품 등으로 중요한 품목이었던 말의 품질 변화는 큰 문제였다.
게다가 섬 전체에 목마장이 산재해 있어 말들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조선은 세종 12년(1430년) 한라산 기슭을 10개의 구역으로 나눠 10소장(所場·목마장)을 설치하고 그 경계에 돌담인 '잣성'을 쌓아 체계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했다.
품종 개량에 대한 시도도 있었다.
전성원 제주대학교 동물생명공학전공 석좌교수에 따르면 재래종인 토마와 외래종인 호마를 인위적으로 교잡해 큰 품종으로 개량하기도 했지만, 큰 말은 대부분 명나라로 징발돼 크기가 작은 말만 제주에 남게 됐다고 한다.
이후 오랜 세월 말들이 제주 섬 안에서 번식, 제주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체구는 왜소하지만 체질이 강건하고 지구력이 뛰어나고 온순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 '제주마' 품종으로 발전했다.
제주마는 현재 별도의 품종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참고로 제주마와 조랑말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제주도축산진흥원에 따르면 조랑말은 과거 140㎝ 미만의 작은 말들을 총칭해서 표현하는 말로 서양의 셔틀랜드 포니, 동양의 과하마, 제주마 등을 포괄하는 의미다.
조랑말은 '상하 진동 없이 매끄럽게 달린다'는 뜻의 몽골어 '조로모리'에서 유래된 말이라고도 한다.

◇ "제주마 작다고 얕보지 말아요!"
제주마를 작다고 얕봐선 안 된다.
제주마의 크기는 수말은 체고(발굽에서 등까지 높이)가 125∼128㎝, 암말은 118∼125㎝ 정도다.
제주마와 더러브렛의 교잡종인 '한라마'(체고 130∼150㎝), 경주마인 '더러브렛'(160㎝)과 비교해 크기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성격이 온순해 사람을 물거나 차는 버릇이 없고, 체질이 건강해 병에 대한 저항력과 생존력이 강하다.
지구력이 강해 무거운 짐을 싣고도 다른 경주마보다 더 오래 견디고 더 멀리 간다고 한다.
제주마의 빠르기는 시속 42㎞ 정도다.
지구상의 가장 빠른 포유동물인 치타(시속 120㎞), 경주마(시속 65㎞)보다 느리지만 3천∼5천m 장거리 대회가 열린다면 제주마가 더 잘 뛸 것이라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 제주마가 군마로 활용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제주는 군마 공급기지로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헌마공신(獻馬功臣)이라 칭송을 받았던 제주 서귀포 의귀마을 출신 김만일은 1594년 4월 말 500여필을 바치는 등 평생 1천300여마리의 말을 조달하며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난극복에 공헌했다.

제주마(어미)의 후손인 암컷 '레클리스'는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해병대에 팔려간 레클리스는 탄약과 포 등을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레클리스는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포화 속에서도 엄청난 무게의 탄약을 닷새 동안 끊임없이 실어날랐고 결국 기지를 탈환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정전협정 후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받았고, 1959년에는 하사 계급장을 받아 미군 최초의 말 부사관이 됐다.
과거 농사일과 전쟁에서 맹활약했던 제주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었다.
1960년대 이후 농기계 보급과 운송수단이 발달하는 등 산업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제주에서 연간 1만∼2만 마리가 체계적으로 사육됐지만, 1980년대 들어서 최저 1천347마리까지 줄어드는 등 제주마는 멸종위기로 치달았다.
제주도는 제주마의 멸종을 막기 위해 1985년 '제주마 혈통정립 및 보존에 관한 학술연구 용역'을 실시하고,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순수혈통 제주마 64마리(암말 55, 수말 9)를 선정했다.
도는 이듬해인 1986년 2월 8일 이들 제주마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 39년이 지난 현재까지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2025년 현재 제주도 축산진흥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주마는 총 167마리(적정 사육두수 150마리)다.
제주흑돼지와 마찬가지로 천연기념물 지위는 제주도축산진흥원에서 사육 중인 순수 혈통의 제주마에 한정하며 밖에서 길러지는 제주마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bjc@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