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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되고 강요된 에너지…책 '일본은 왜 원전을 멈추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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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사람의 희생 위에 원전은 움직이고 있다. 원전 추진을 결정한 사람들은 피폭하지 않고 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 나가타조에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일본 사회에는 '탈원전'을 향한 물결이 잠시 일렁였지만, 이내 원전 중심의 질서로 회귀했다. 그 흐름을 냉철하게 기록하면서 '원전 없는 사회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외치는 언론인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기자 아오키 미키다.
그가 2023년 출간한 '일본은 왜 원전을 멈추지 않는가?'(마르코폴로)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돼 발간됐다. 일본에서 출간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제3회 탈원전문학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책은 원전 정책 비판을 넘어 일본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핵 마피아'의 구조적 실체를 추적하고, 민주주의와 언론의 위기를 함께 고발한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현장을 직접 누비며 취재했던 저자는 사고 직후 전국에서 촉발된 '탈원전' 운동이 허무하게 묻혀버린 이유를 들춰낸다. 민주당 정권이 한때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선언했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일본 사회는 다시 '원전 부흥'으로 회귀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원전으로의 회귀 과정에서 원전 사고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다. 방사능의 위험을 언급하는 사람을 '풍문 피해를 조장하는 자'로 낙인찍었고, 급기야 과학자와 인문학자까지 '어용학자'로 동원해 원전 비판자들을 오히려 '풍문 가해자'로 몰고 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계, 관료, 전력 업계, 학계, 미디어가 서로 얽히고 이익을 공유하는 '핵 마피아'의 실체도 고발한다. 저자는 이들이 가짜 '원전 안전 신화'를 만들어 반복해 주장하고, 이에 호응해 전력회사와 정계가 '정치자금 파티', '홍보 캠페인' 등을 동원해 사회 여론을 길들였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탈원전이 단순히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넘어 '민주주의의 회복'과 직결된다고도 주장한다. 시민의 말할 권리, 언론의 보도할 자유, 과학의 독립성 모두가 원전 산업 구조 안에서 압박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원전을 멈추지 못하는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원전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고집하는 다른 나라들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남긴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가 원전에서 탈출하는 것이 인류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오하라 츠나키 옮김. 280쪽.
hyun@yna.co.kr
<연합뉴스>